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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으면 웃음이 나옵니다
고정혁기자2011년 08월 24일 19:29 분입력   총 879732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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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하는 길이면 다섯 살 난 딸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줍니다. 집에서 나와 골목을 지나 큰 길까지 가는데 요즘은 집집마다 담장 너머로 형형색색의 꽃들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어린 딸은 무슨 꽃인지 모르면서 꽃의 색깔을 이야기합니다. 맑은 날, 고운 햇살과 예쁜 꽃과 해맑은 아이의 웃음이 어우러져 세상을 환하게 만듭니다. 아빠의 검지 하나를 잡고 손을 흔들며 걸어가면서 아이는 조잘댑니다.
"아빠! 기분이 좋으니까 계속해서 웃음이 나와."

우리의 삶이 이 아이처럼 해맑고 행복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보니 갖가지 고민으로 행복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기분이 좋으면 계속해서 웃음이 나왔을 거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그 기분을 느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진심으로 충실합니다. 남의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과 관심에 귀 기울여줍니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과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 손에 쥐고 있는 장난감과 과자를 보면서 즐거워합니다. 감정은 언제나 명확하고 꾸밈이 없습니다. 그래서 좋으면 웃고 기분이 나쁘거나 아프면 그저 웁니다.

그러나 나이를 들어가면서 나는 나로부터 조금씩 서서히 멀어집니다. 아마도 그게 사람의 속성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도를 닦는 스님들이 얻고자 하는 바가 "참 나"라고 하는 것이라면 아주 어렸을 때 갖고 있었던 마음을 다시 찾아 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미국 사람인 바이런 케이티가 지은 <네 가지 질문>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온 우주에는 세 가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일, 남의 일, 신의 일입니다. 여기서 현실은 신입니다. 현실이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나의 통제, 당신의 통제, 모든 사람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신의 일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비가 오거나, 꽃이 피거나, 자동차 사고가 나거나, 병에 걸리거나 등…."

다섯 살 아이는 오직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둡니다.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남에 일에 간섭하는 것은 언제나 아이의 엄마입니다. 어지르지 마라, 밥 먹을 때는 한자리에 앉아서 먹어라, 씻을 때 물 튀기지 마라. 아이를 간섭하는 엄마의 요구는 끝이 없습니다. 성인이 된 우리는 대상이 틀릴 뿐 아이의 엄마와 같습니다. 당신은 살을 좀 빼야 해, 너는 일찍 일어나야 해, 너는 운동을 해야 해. 늘 남의 일에 간섭합니다. 홍수나 전쟁, 내가 언제 죽을지를 걱정한다면, 신의 일을 간섭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일이 아닌 것에 마음을 쓰면 언제나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아이들이 행복해 보이는 것은 언제나 자기 일에만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의 일, 남의 일, 신의 일을 구분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전보다는 훨씬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남의 일, 신의 일을 간섭하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암환자도 남의 일, 신의 일을 간섭하면서 자신의 삶을 방치합니다. 가족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가족이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게 될까봐 태연하게 구느라고 자신의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습니다. 때로는 가족들이 암환자인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원하는 대로 돌봐주지 않아서 화를 내기도 합니다. 오늘도, 어제도, 한 달 전에도, 일 년 전부터 언제 암으로 죽을지 걱정하느라 살아있는 현재를 다가오지도 않는 죽음과 맞바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살아만 있다면 기회는 언제든지 있습니다. 현실은 신의 일입니다. 부정한다고, 외면한다고, 분노한다고 일어난 일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 이 일이 일어났을까?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일어난 지금이 현실이고 그것이 신의 일입니다. 그러니 남의 일에 고민하지 말고 당장 나의 일로 돌아와 나의 삶에 충실하십시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기분이 좋아지면 기분이 좋으면 계속해서 웃음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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