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수기
-> 투병수기
식도암 8년의 기록 - 다시 찾아온 위기
고정혁기자2012년 02월 20일 17:20 분입력   총 838126명 방문
AD

요양생활을 하면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용서할 줄 모르고 자신만 생각하며 운동도 하지 않는 환자가 대부분 먼저 세상을 등지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암환우들의 성격은 일반인과는 조금 다르다. 몸에 암세포가 있으니 두려움에 쌓여 그런지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내고 불평하고 남을 시기하기가 쉽다. 기왕이면 내 몸에 있는 암세포일지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투병에 임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이것은 내가 수많은 암환자들과 함께 지내며 배운 진리이다. 내 몸과 가족 그리고 암에게조차 화내고 투정하고 미워하면 안 된다.

충주에서 요양생활을 10개월 정도 했는데 병원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음성에 있는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 주위에는 공장들이 많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경기도 동두천으로 옮겼다. 이곳에서도 나의 생활은 똑같았다. 친형님처럼 지내던 환우 한분 함께 새벽마다 같이 웃으며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즐거웠고 힘든 상황에서도 잘 이겨내실 수 있도록 옆에서 좋은 말도 해드리고 용기도 북돋워드렸는데 애석하게도 헤어진 지 몇 개월 후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주위 동료가 먼저 하늘로 가면 정말 우울하고 그립고 보고 싶다. 암환자기에 앞날을 예측할 수는 없다지만 그래도 충격이 큰 이유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상황이 꽤 많아서이다. 거동도 못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더라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했을 텐데 같이 산을 오르고 웃음치료도 하고 약초도 캐러 다닐 만큼 건강했었는데 어느 순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그럴 때면 나는 언제나 산을 오른다. 산에서 목청 놓아 박장대소를 하고 노래를 부르면 언제 그랬나 싶게 다시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동두천에서 웃음치료 봉사를 다니고 환우들에게 벌침도 놓아주고 등산도 함께 다니다보니 나도 모르게 외식을 하게 되었고 가랑비에 옷이 젖듯 옛날 습관으로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던 2008년 4월. 역시 등산을 하고 저녁식사를 했다. 메뉴는 아구탕. 고기 한 점을 넣고 국물이 맛있어 보여 들이켰는데 너무 뜨거워서 그만 고기까지 넘어가다가 목에 딱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목에 걸린 채로 밥은커녕 물 한 모금조차 넘어가지를 않는 게 아닌가. 식사를 그만두고 동두천 요양원으로 돌아와 있다가 밤이 되어 목이 말라 물을 마시니 물도 전부 넘어오는 것이었다.

아이쿠. 식도암 때와 똑같은 증세였다. 머릿속은 순식간에 새하얀 도화지가 되어 밤새 뜬눈으로 지내다가 아침에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와 이비인후과를 찾아 암환자라고 밝히지 본 병원으로 가보라며 진료를 해주지 않았다. 병원에는 너무도 가기 싫었지만 안 갈수가 없었다. 항암을 중단하고 뛰쳐나왔는데 이제 또 암이라고 하면서 항암을 하자고 할까봐서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치료 거부 4년 2개월 만에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다. 담당 교수는 검사를 해봐야 한다며 위내시경, CT, PET-CT 세 가지를 신청하라고 하였다.

신청하고 집으로 돌아와 기다리는데 사흘 내내 물 한 모금도 넘어가지를 않았다. 마음부터 벌써 끙끙 앓고 몸도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4일째 되는 날, 아침에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목구멍에 수저를 넣고 억지로 구토를 시도하니 고기 한 점이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물을 마셨더니 훌훌 잘만 넘어갔다. 죽을 끓여서 조금 먹고 병원 검사는 이제 안 해도 되겠다 생각하고는 요양원으로 다시 갈 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붙들고 사정을 하는 것이다.

병원을 나온 지도 벌써 4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병원을 찾지 않았으니 기왕 검사 신청한 김에 받아보자는 거다. 나는 완강히 거절하였다. 지금까지도 잘 살아왔는데 검사를 왜 하느냐고 하니 아내는 울먹이면서 사정을 했다. 나를 사랑한다면 이번에는 고집 부리지 말고 내 말을 한 번만 들어달라며 매달렸다. 만약 검사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동안의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니 기쁘기 짝이 없겠지만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또 병원에서는 항암이나 방사선 검사를 하자고 할 텐데 그러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나는 아내에게 지금처럼 아예 모르고 살고 싶고 그러니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당신은 하나님이 고쳐주셨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나를 계속 설득했다. 결국 아내의 소원대로 위내시경과 CT, PET 검사를 받았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또다시 심장을 조이는 시간. 검사 결과를 들으러 아내와 함께 담당교수 앞에 앉았다. 암은 있습니다. 나와 아내는 거의 정신을 잃었다. 분명히 자전거 사고로 다른 병원에서 검사했을 때는 암이 없다며 의사가 악수를 청하고 축하한다고 했었는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청천벽력이었다. 아, 그 사이에 암이 결국 재발되었고 전이되어 나는 이제 죽어야 하는가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담당교수는 전혀 뜻밖의 말을 한다.

이런 말기암 환자가 4년 넘게 치료를 받지 않은 채로 살아서 병원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설사 살아있다고 해도 위와 폐, 간, 뼈로 전이가 되어 있는 상태일 텐데 암이 다른 부위로 전이 되지도 않고 2004년 1월 검사했던 이 모습 그대로 식도와 양쪽 림프절에 암이 똑같이 있다면서 기적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우리 부부는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기도했다. 이렇게 건강할 때 항암을 합시다. 교수의 말을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2004년 당시 밥이 도저히 넘어가지 않아 병원을 찾았고 치료를 거부하고 9개월 만에 밥을 다시 먹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했었다. 교수는 사진들을 비교해보며 그때는 암이 식도 벽에 거의 붙어 있었다가 암이 식도 벽에서 조금 떨어져서 틈새가 있어 밥을 먹을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렇다면 자전거 사고로 검사했을 때는 암이 없다고 했는데 어찌된 것인지 이것도 궁금했다. 사진 찍은 부위가 어디냐고 하기에 목 부분을 가리켰더니 암이 있는 부분은 목이 아니라 그 아래 가슴쪽이라고 하셨다. 내가 여태 알고 있고 통증이 있다고 느꼈던 그 부분이 아니었다. 엉뚱한 곳을 검사하고는 암이 없다고 기뻐했었다니. 어이가 없고 허탈하기도 했었지만 생각해보면 암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만약 내가 제대로 암의 위치를 짚어 이 부분을 검사해 달라고 했고 그 당시 의사가 어떻게 하나요 암이 있네요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동안의 노력도 일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나는 절망에 빠진 채 암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분명 세상에는 없는 사람이었을 게다.

암이 있는데도 없다고 착각하고는 항상 기분이 즐겁고 행복한 채로 요양생활에만 전념하니 암이 동면상태로 내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없다고 생각하니 없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래. 암이 있다고 이제 검사로 알았지만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옥과 천국을 오가다가 나는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항암을 하자는 요구를 뿌리치고 요양원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집에서 급한 일이 있으니 빨리 오라는 연락이 왔다. 하던 일을 접고 집으로 왔더니 아내가 무작정 병원을 가자고 했다. 항암을 한다고 신청을 해 놓았다는 것이다. 내가 완강히 거부하니 아내는 나를 설득하며 그렇다면 의사나 한번 만나보자고 하여 종양학과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 교수 역시 이런 식도암 환자가 살아있다는 게 신기하다며 식도암은 수술하면 그래도 예후가 좋은데 수술하지 못하는 환자는 2년 살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지금 건강할 때 항암을 하자는 것이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거절했지만 교수는 식도암을 막무가내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항암을 하던지 방사선이라도 하여 암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고민이 되었다. 암이 없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그대로 있었고 몰랐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는데…. 이전처럼 그대로 지내자고 마음 먹었건만 다시 의사 앞에서 의사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흔들리면서 마음이 약해졌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환자들이 항암 안 한다고 했다가도 때가 되면 결국 항암을 하러 가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보았다. 아내는 옆에서 사정을 한다. 항암을 하지 않으려면 방사선이라도 하자고. 어떻게 해야 하나. 길지도 않은 그 시간에 마음은 수없이 한다 안 한다를 오갔다. 결국에는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방사선이라도 하자고 결정하였다.

방사선과로 가서 그쪽 교수님과 상담을 했다. 36회. 방사선을 하게 되면 어느 정도 치료가 되며 다른 장기에는 어느 정도 피해가 있는 겁니까? 암은 줄여주고 다른 장기에 손상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해보자.

2008년 4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7월초까지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되었다. 나는 치료 받을 때만 제외하고는 예전처럼 똑같은 생활을 하며 밤에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2개월 동안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육체적으로는 조금 힘들었지만 다른 생각으로 자꾸만 마음이 끌릴까봐서, 그리고 살아있다는 증거를 보이는 셈이라 생각하고 더 열심히 교육을 받았다. 검사 결과는 7월 20일. 암은 보이지 않았다며 다시 CT를 찍자고 하였다. 결과는 8월 1일 보기로 하였다.

뒤로월간암 2012년 2월호
추천 컨텐츠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