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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7년을 넘어 희망을 보다
임정예(krish@naver.com)기자2013년 01월 21일 16:06 분입력   총 67709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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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숙(52) |2006년 유방암 3기 진단

나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위로 오빠가 한 분 있고 아래로는 동생이 두 명이 있다. 오빠는 어려서 앓은 소아마비 때문에 장애를 갖게 되었고 때문에 내가 가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오빠를 돌보면서 두 동생들을 키우고 대학교를 졸업시키고 결혼도 시켰다. 힘든 생활이지만 종교적인 믿음은 나를 지탱시켜 주는 커다란 의지가 되었으며, 그런 믿음 속에서 늦은 나이였지만 1997년에 결혼을 하였다. 남편도 몸이 불편한 사람이었지만 종교적인 믿음으로 극복하였다. 그러나 결혼한 지 4년 만에 남편은 딸을 하나 남겨 두고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딸은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된다.

2006년 유방암 3기말 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가족들 돌보고 교회 봉사활동도 왕성하게 했으며 남을 돌보는 일을 즐겁게 여기며 살아왔는데 너무도 뜻밖의 진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어린 딸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고 고등학교라도 졸업시킬 때까지 딸아이를 지켜 주고 싶은 게 소원이었다. 그리고 이제 7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아직 암과의 투병이 끝난 건 아니지만 그동안 몰라서 얻지 못한 희망을 품고 투병하고 있다.

처음 유방암 치료를 받을 때에는 우선 왼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3기말이었기 때문에 전 절제를 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측 가슴에 상피 내암이 발견되어 우측 가슴도 전 절제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지루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는데 얼마 전까지도 꾸준히 항암을 받았다. 7년 가까이 계속된 항암의 후유증은 몸을 치료하기보다는 더욱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이빨은 잇몸에 붙어 있을 뿐 모두 흔들려서 씹을 수조차 없고, 혈관이 모두 사라졌는지 링거와 같은 혈관 주사를 맞으려면 병원에서 혈관을 찾는 특수 장비를 동원해서 주사를 놓아야 했다. 만성적인 소화불량과 변비 등 온갖 증상들이 나를 괴롭혀 왔다. 2006년 수술과 항암을 통해서 어느 정도 치료가 될 줄 알았는데 2007년에 임파선과 등뼈, 허리 등으로 암은 퍼졌고 방사선치료를 받게 되었다.

당시 병원에서 치료하면 암은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만 의지하며 치료하였는데 계속해서 암은 전이를 거듭하고 항암약에 대한 부작용은 점점 더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항암 치료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2011년 여름부터는 항암을 거부하고 있다.

종교적인 믿음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치료를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서 거울을 보니 웬 칠십 대 할머니가 거울에 있었다. 머리는 다 빠져있고 피부는 쪼글쪼글하고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성한 이빨이 하나도 없어서 먹을 수조차 없었다. 참혹한 몰골에 너무도 상심하여 침대에 누웠는데 죽고 싶은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굶어서 죽으려고 작정하였는데 남동생이 다가왔다.
"누나야! 이 순간만 넘기면 살 수 있다. 고모들도 보니까 다들 오래 살고 있다. 이 순간만 넘겨라."남동생이 나를 잡고 눈물을 흘리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구청 사회복지과에 근무하는 간호사에게 나의 신세 한탄을 이런 말을 들려줬다.
"제가 여러 집을 다니면서 암환자들을 많이 보는데, 통계로 보면 암이 여러 번 전이되는 사람이 오래 삽디다."
천 길 낭떠러지 끝에서 더는 갈 곳도 없는 나를 돌이키게 한 말이었다. 내가 안타까워서 해준 위로였는지 통계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확인할 필요도 없는 희망의 동아줄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동굴에 비쳐둔 한줄기 빛이었다. 그때 간호사에게 들은 그 말은 내게 희망과 감사의 마음을 되돌려주었고, 너무 힘들어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나를 다시 살려주었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어 살고자하는 결심을 하였다.

살자고 결심하고 그동안의 치료 과정과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문득 깨달았다.
'암에 걸렸는데 나는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이런 생각은 나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음식, 사고방식, 습관 등 그 동안 내가 살아온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암에 걸렸다면, 잘못된 부분에 변화를 주어야 암도 이겨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나의 몸에 맞는 니시요법을 알게 되었다. 풍욕, 냉온욕, 운동, 겨자찜질 등으로 만들어진 요법이고, 부산에 마더즈힐링센터를 방문하여 2주 교육 받은 후에 생활에 적용하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풍욕하고 냉온욕과 겨자찜질을 매일 빠짐없이 하고 있다. 이 요법을 적용하여 생활한지가 두 달 정도 지났는데 나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좋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왜 진작 이런 요법들과 함께 투병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그리고는 병원에서 치료했던 것들에 대해서 득실을 따져보았다. 만약 내가 처음으로 돌아가서 암투병을 시작한다면 병원의 치료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니시요법과 병행했다면 결과가 지금보다는 훨씬 좋아졌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해주는 치료가 암 치료의 전부라고 생각했었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보니 항암치료가 암 치료의 전부는 아니었다. 부산 마더즈힐링센터에서 2주 동안 배운 니시요법은 나의 몸과 생활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고 있다.

암을 진단 받으니 젊었을 때 혹시 몰라서 들어 놓은 몇 가지 보험에서 팔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보험금을 받았다. 암을 치료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보험료를 받는 줄은 알았지만 실상 병원에서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하는 데는 그리 많은 돈이 들지 않았다. 의료보험의 혜택 때문에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몇 백 만원의 수술비만 들었고 항암약은 몇 십만 원이면 받을 수 있었다. CT나 MRI같은 검사는 거의 무료에 가까운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실제로 내가 받은 보험금에 비하면 아주 일부분만을 치료에 썼다.

그래서 남는 돈으로는 어렵게 지내고 있는 지인들도 도와주고,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가 돈이 없어서 쩔쩔 매고 있으며 대신 지불해주고, 또 나 자신을 위해서 여행도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으며 마치 로또에 당첨된 듯 돈을 쓰고 다녔다. 또 내심으로는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돈 남겨서 뭐하겠나하는 생각이 있었나보다. 그런 생활이 몇 년 지나니 보험금으로 탔던 돈은 거의 사라지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원래 원예업을 했었다. 화훼단지에서 꽃이나 선인장 같은 식물을 키우고 판매하는 일이었는데 경제적으로 쪼들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을 시작했다. 아는 지인이 매장에서 판매하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으니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작년부터 아르바이트나 하자는 심정으로 출근을 하였다. 그동안 암과 투병 때문에 일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왔지만 일을 시작하고 보니 암 때문에 일도 못한다는 것은 그저 핑계 밖에 안 되었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화훼단지에서 햇빛을 보며 꽃과 함께 있으니 때때로 서있기가 힘들지만 몸은 오히려 더욱 건강해지고 몸무게도 정상적으로 서서히 바뀌었다. 일을 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칠십대 노인 같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제 나이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또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이 예전보다 더 강해졌으며 경제적인 여건도 좋아졌다.

7년 넘게 투병하면서 같은 병실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로 갔다. 나의 몸도 아픈 처지이지만 나는 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많은 애를 썼다. 치료를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위로를 전하고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은 내가 직접 동사무소에 찾아 가서 아픈 동료의 금전적 어려움을 호소하여 도움을 청하기도 했으며, 교회 활동도 더욱 열심히 하였다.

가장 큰 변화는 암에 걸리고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몸이 너무 아파서 공부가 지지부진하지만 그나마 지금은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고 있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신학 공부를 열심히 할 작정이다. 그래서 암과 투병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엇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또 나의 경험들을 간증하면서 희망을 전해주고 싶다.

암환자가 희망을 놓으면 죽는 것이다. 나의 경험이 그러하다. 누구라도 옆에서 항상 희망을 전해 주면 그 희망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다. 암과 투병하는 많은 분들은 아무리 힘들고 전이되고 재발이 된다 해도 부디 '희망'은 놓지 마시기를 당부 드린다. 암환자가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희망'이다. 부디 희망의 손을 꼭 잡고 성공적인 투병이 되기를 기도한다.

뒤로월간암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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