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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우생마사(牛生馬死)
고동탄(bourree@kakao.com)기자2025년 01월 23일 08:44 분입력   총 171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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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철우(수필가)

요즘 한창 캘리그라피를 쓰는 친구가 연말이라며 캘리그라피 이미지가 들어간 온라인 엽서를 보내왔다.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이라며 리터칭 프로그램으로 이것저것 후보정하고, 작은 글자는 타이핑 그리고 제목인 ‘牛生馬死’는 캘리그라피로 써넣은 것이 꽤 그럴듯해 보이는 엽서였다.

이미지를 확대해 보니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牛生馬死’의 의미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큰 저수지에 말과 소를 넣으면 둘 다 헤엄쳐 뭍으로 나오는데, 말이 헤엄치는 속도가 아주 빨라 소의 두 배쯤 빨리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장마 기간의 크게 불어난 물이라면 소는 살아 나오지만, 말은 익사한다는 것. 헤엄을 잘 치는 말은 자신의 실력을 믿고 물살을 이겨내려고 거슬러 헤엄치며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다가 지쳐서 그리된다는 것이고, 소는 절대 물을 거슬러 헤엄치지 않는다고 한다. 물살을 등지고 떠내려가면서 조금씩 강가로 이동하고, 떠내려가면서 또 조금 강가로 이동하여 마침내 거센 물살을 벗어난다고 한다. 헤엄을 잘하는 말은 물살을 거슬러 오르다 힘이 빠져 익사하고, 헤엄이 둔한 소는 물살에 편승해 조금씩 강가로 나와 목숨을 건진다는 것. 인생을 살다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헤어나기 힘든 순간이 있는데,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소와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 글의 내용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에 좋은 글인 것 같아 주변에 많이 전달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비슷한 조언을 했던 사람이 있었다.

1997년.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나는 병원에 드러눕고 말았다. 당시만 해도 종합병원에서조차 치료 방법에 한계가 있어서 ‘더 큰 병원’을 추천하던 때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가느다란 희망의 끈조차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급한 대로 병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해 있던 때였다. 어떤 치료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지, 방법이 있기는 한지, 살 수는 있는지, 하나뿐인 딸아이는 잘 키울 수 있는지. 머릿속은 온통 엉킨 실타래처럼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로 가득했다. 하루는 집사람이 긴장한 얼굴로 나를 불러 앉혔다. 아파트 주민에게 용하다는 점집을 소개받았는데, 한번 가보자는 제안이었다. 서로가 점집에 의지하며 살아오지 않은 탓에 거절하려고 했으나, 집사람의 간절한 시선을 보자 차마 고개를 가로저을 수 없었다.

경기도 광주라고는 해도 집이 있던 분당과는 거의 붙어 있는 곳이라 십여 분 만에 찾을 수 있었다. 오래된 가정집에서 점사를 보는 곳이었는데, 현관문을 밀자, 거실에 가득 앉아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우리에게 몰렸다. 오롯이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간 속에서 병색이 완연한 삼십 대 중반의 부부가 들어왔으니, 자신들의 고민은 잊은 채 일행들과 흘끔거리며 우리의 고민에 관해 관심을 두기 바빴다. 그 소란스러움은 삐걱거리는 거실의 나무 바닥을 지나 구석에 남은 두 자리를 찾아 앉은 후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한 시간 반쯤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손님이 많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점사를 잘 본다는 증빙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살 수 있을까.

모셔놓은 신당도 없고, 한복도 입지 않은, 오래된 자개장 옆에 조그만 책상을 하나 놓고, 운동복 바지를 입은 오십 대의 남자가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사주를 보더니, 한숨을 한번 쉬고 점쟁이 같지 않은 점사를 내놨다.

“쉬세요. 세상과 맞서지 말고 흘려보내세요.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는 겁니다.”

풀어낸 점사라기보다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 같은 것이었다. 그는 그날 복채도 받지 않았다. 의외였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사람에게 굿이나 경면주사(鏡面朱砂) 부적이라도 권한다면 돈을 벌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저 ‘일주일 후에 들르라’는 말이 그의 마지막 주문이었다.

그날도 손님은 가득했다. 한두 시간쯤은 기다릴 요량으로 도착했으나, 우리가 온 것을 안 그가 거실로 나오더니 우리를 밖으로 불렀다. 산에서 직접 해온 나무라며, 가져가서 달여 먹으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휑하고 집으로 들어간다. 복채나 나뭇값 등은 애초에 관심도 없어 보였다. 이름도 모르는 나무를 차 트렁크에 옮기면서도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멍한 기분이었다.

한동안 세월을 흘려보냈다. 소처럼 물을 거슬러 헤엄치지 않았고, 세월에 떠밀려갔다. 시간에 순응하며 아내의 뜻에 따라 처절한 병마와의 사투가 시작됐다. 그렇게 오 년쯤 지났을까. 병과 함께 사는 것이 익숙해질 무렵 다시 광주를 찾았다. 주차하는 곳에 차들이 없어 의아하던 순간, 그의 아내로 보이는 사람이 집 앞에 나와 ‘몸이 아파 손님을 볼 수 없다’며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얼굴을 마주 보며 놀라고 말았다. 오 년 전만 해도 나를 위해 지게로 나무를 해주던 그가 아니었던가.

다시 오 년쯤 흘러 방문한 그곳은 이미 찾는 사람도, 돌려보낼 사람도 보이지 않는 적막한 곳이 되어 있었다. 그는 아직 투병 중일까? 계속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을까? 우생마사(牛生馬死) 이야기가 생각날 때마다 그의 조언이 삶의 한 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지침처럼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세월을 흘려보낼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뒤로월간암 202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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