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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걱정은 덜고, 통증만 부드럽게 지운다
고동탄(bourree@kakao.com)기자2026년 02월 28일 20:02 분입력   총 13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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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과학자들, 호흡 억제 없는 안전한 진통제의 ‘비밀 열쇠’ 발견
암 환우나 만성 통증 환자들에게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는 ‘양날의 검’과 같다. 끊어질 듯한 고통을 잊게 해주는 고마운 약이지만, 동시에 호흡을 멈추게 하거나 심각한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USF Health) 연구진이 이 딜레마를 해결할 중요한 실마리를 찾았다. 통증은 확실하게 잡아주면서도 생명을 위협하는 부작용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약물의 작동 원리를 밝혀낸 것이다.

통증은 끄고, 숨은 쉬게 한다
지난 12월 17일,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이번 연구는 우리가 흔히 아는 모르핀이나 펜타닐 같은 진통제가 우리 몸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근본적으로 다시 파헤쳤다. 우리 몸의 신경세포에는 ‘뮤(mu) 오피오이드 수용체’라는 단백질이 있다. 진통제가 들어와 이 수용체와 결합하면 통증 신호가 줄어든다. 문제는 이 스위치가 켜질 때, 통증만 꺼지는 게 아니라 ‘호흡’을 관장하는 신호까지 같이 꺼버린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마약성 진통제 과다 복용 시 사망에 이르는 주된 원인이다.

연구를 이끈 로라 본(Laura M. Bohn) 박사 팀은 “통증 완화 효과는 그대로 두면서, 호흡 억제 같은 위험한 부작용만 쏙 빼고 작동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세포 신호의 ‘역주행’을 유도하라
연구팀이 발견한 비밀은 바로 ‘신호의 방향’에 있었다. 지금까지는 약물이 수용체에 붙으면 일방통행으로 신호가 전달되어 통증 완화와 부작용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믿었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 신호 전달 과정의 첫 단계가 ‘거꾸로(Reverse)’ 진행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놀랍게도 연구팀이 실험한 새로운 화합물들은 이 신호 체계를 정방향이 아닌 ‘역방향’으로 유도하는 성질이 있었다. 이 물질들을 아주 적은 양만 기존 진통제(모르핀, 펜타닐 등)와 함께 사용했더니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통증 완화 효과: 훨씬 더 강력해졌다.
호흡 억제 부작용: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즉, 약물이 세포 안에서 신호를 보내는 방식을 조절함으로써, 나쁜 부작용은 피하고 좋은 효과만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안전한 진통제를 향한 설계도
물론 당장 내일 새로운 알약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연구된 물질들은 아직 초기 단계의 실험용 화합물이다. 하지만 에드워드 스탈(Edward Stahl) 박사는 “이번 발견은 수용체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교과서적인 지식을 바꿀 만큼 중요하다”며 “이 원리를 이용해 미래에는 훨씬 안전한 진통제를 설계할 수 있는 ‘설계도’를 얻은 셈”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확인된 가능성, SR-17018
연구팀은 이미 이 원리가 적용된 ‘SR-17018’이라는 후보 물질을 찾아낸 바 있다. 이 물질은 기존 진통제와 달리 내성이 생기거나 숨이 멎는 부작용이 거의 없다. 기존 진통제는 수용체에 딱 달라붙어 다른 신호를 막아버리지만, 이 새로운 물질은 수용체에 붙는 방식이 달라서 우리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천연 진통 물질(엔돌핀 등)이 들어갈 자리를 남겨둔다. 덕분에 더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통증을 조절할 수 있다.

본 박사는 “이번에 밝혀낸 ‘역방향 신호’ 원리를 SR-17018에 접목해 더 완벽하고 안전한 약물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증 너머, 우울증 치료까지
이번 발견의 파급력은 단순히 진통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 몸에는 오피오이드 수용체 외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수용체들이 많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과 관련된 ‘세로토닌 수용체’도 이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본 박사는 “이 메커니즘은 우울증이나 조현병 같은 신경정신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도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도 많은 환우가 통증 조절을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며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산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제 ‘고통 없는 삶’뿐만 아니라 ‘두려움 없는 치료’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디뎠다. 숨쉬기 힘들거나 중독될 걱정 없이, 오롯이 통증만 지워주는 ‘착한 진통제’가 하루빨리 환우들의 곁으로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편집실 코멘트]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 왜 위험한가?
작동 원리: 뇌와 척수에 있는 수용체와 결합하여 통증 신호가 전달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주요 약물: 모르핀, 옥시코돈, 펜타닐 등.
부작용: 변비, 구역질 등 가벼운 증상부터, 오래 쓰면 약효가 떨어지는 ‘내성’, 약 없이는 못 견디는 ‘중독’, 그리고 가장 위험한 ‘호흡 억제(숨이 느려지거나 멈춤)’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의 핵심: 통증은 줄이되, 호흡 억제는 일으키지 않는 새로운 신호 경로를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참조]
1. Edward L. Stahl et al., "GTP release-selective agonists prolong opioid analgesic efficacy", Nature, 2025.
2. Laura M. Bohn et al., "Characterization of the GTPγS release function of a G protein-coupled receptor", Nature Communications,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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