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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대의 적, ‘암’과 ‘치매’를 연결하는 비밀의 열쇠
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6년 04월 30일 19:29 분입력   총 58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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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 단백질이 암을 유발하는 원리 세계 최초 규명
현대 의학이 직면한 가장 거대하고 두려운 두 개의 산. 바로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퇴행성 뇌 질환)’와 몸속에서 무한 증식하는 ‘암’이다. 겉보기에는 증상도, 발생하는 위치도 완전히 다른 이 두 질병은 그동안 의학계에서도 전혀 다른 분야로 나뉘어 별개로 연구됐다.

하지만 최근, 이 두 거대한 질병이 사실은 우리 몸속의 ‘단 하나의 단백질’에 의해 동시에 조종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이고도 획기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미국 휴스턴 감리교 병원(Houston Methodist)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핵산 연구(Nucleic Acids Research)>에 발표한 이 논문은, 루게릭병과 치매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던 특정 단백질이 암세포의 돌연변이까지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해 냈다.

내 몸속의 깐깐한 교정자, ‘DNA 불일치 복구’ 시스템
이 놀라운 발견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 몸의 세포가 분열할 때 일어나는 생물학적 경이로움을 알아야 한다. 우리 몸의 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며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는데, 이때 30억 개가 넘는 방대한 DNA 유전자 암호(설계도)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복사해야만 한다.

마치 수천 페이지짜리 책을 매일 손으로 베껴 쓰는 것과 같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오타(유전자 복사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 몸에는 이 오타를 귀신같이 찾아내어 올바른 글자로 수정해 주는 깐깐한 교정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를 의학 용어로 ‘DNA 불일치 복구(DNA Mismatch Repair)’라고 부른다. 이 교정 시스템 덕분에 우리는 암이나 희귀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치매 단백질 ‘TDP43’, 알고 보니 교정 시스템의 총책임자
연구팀의 시선이 머문 곳은 ‘TDP43’이라는 이름의 단백질이었다. 이 단백질은 본래 운동 신경이 파괴되는 무서운 병인 ‘루게릭병(ALS)’과 성격이 변하고 언어 장애가 오는 ‘전측두엽 치매(FTD)’ 환자들의 뇌에 비정상적으로 찌꺼기처럼 뭉쳐있는 녀석으로 악명이 높았다. 즉, 뇌 질환을 일으키는 ‘나쁜 악당’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휴스턴 감리교 병원 연구소의 무랄리다르 헤그데(Muralidhar L. Hegde) 교수팀이 세포의 안쪽을 정밀하게 들여다본 결과, 놀라운 반전이 숨어있었다. 악당인 줄로만 알았던 이 TDP43 단백질이 사실은 앞서 말한 유전자 오타를 수정하는 ‘교정 시스템’을 총괄하는 핵심 관리자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교정자가 미쳐 날뛸 때 벌어지는 비극
문제는 이 관리자(TDP43)의 숫자가 너무 적어지거나, 반대로 너무 많아질 때 발생한다. 단백질의 균형이 깨지면 유전자를 고치는 교정 시스템(복구 유전자)이 완전히 통제를 잃고 미친 듯이 활성화(과잉 작동)되어 버린다. 오타만 고치고 빠져야 할 교정자가 책의 멀쩡한 문장들까지 마구잡이로 뜯어고치고 찢어버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포를 보호해야 할 복구 시스템이 오히려 세포의 뼈대(유전체)를 엉망진창으로 붕괴시키면, 가장 연약한 뇌의 신경세포(뉴런)들이 버티지 못하고 파괴된다. 이것이 바로 치매와 루게릭병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뇌 질환을 넘어 ‘암’의 영역까지 확장된 단서
연구팀의 놀라운 발견은 뇌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방대한 암 환자들의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져보았다. 분석 결과, 종양 세포 내에 이 TDP43 단백질이 과도하게 많은 환자일수록 암세포에 엄청나게 많은 ‘돌연변이’가 발생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앞서 말한 통제 불능의 교정 시스템이 유전자를 마구 헝클어놓은 결과, 뇌세포가 죽는 대신 세포가 기형적으로 변이하여 무한 증식하는 ‘암’이 되어버린 것이다.

헤그데 교수는 “이 발견은 TDP43 단백질이 단순히 치매나 루게릭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명백히 보여준다”며, “우리 시대의 가장 치명적인 두 질병 카테고리인 ‘신경 퇴행성 질환’과 ‘암’이 만나는 정확한 교차로에 이 단백질이 서 있다”고 강조했다.

근본을 치료하는 새로운 마법의 탄환을 향해
적의 정확한 정체를 알았다는 것은, 곧 적을 제압할 완벽한 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구팀은 실험실에서 비정상적인 TDP43 단백질 때문에 미쳐 날뛰는 ‘과도한 유전자 교정 활동’을 인위적으로 억제해 보았다. 그러자 망가져 가던 세포의 손상이 부분적으로 회복되는 놀라운 결과를 얻어냈다. 단순히 증상만 늦추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망가지는 폭주 기관차의 브레이크를 찾아낸 셈이다. 헤그데 교수는 “DNA 불일치 복구 과정을 제어하는 것이 향후 완전히 새로운 치료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인류는 암을 치료하는 약, 치매를 치료하는 약을 각각 따로 찾기 위해 헤매왔다. 하지만 하나의 자물쇠로 두 개의 거대한 문을 동시에 잠그고 열 수 있다는 이 경이로운 생물학적 발견은, 훗날 단 하나의 혁신적인 치료제로 암과 치매라는 인류 최대의 난제를 동시에 극복할 가능성을 매우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생명의 가장 깊은 곳, DNA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학자들의 집념이 만들어낼 눈부신 기적을 기대해 본다.

[Box] 쏙쏙 이해되는 최첨단 의학 용어
TDP43 (티디피43): 세포의 핵 안에서 유전자 정보를 다듬고 조율하는 중요한 단백질입니다. 이 단백질이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해 뇌에 쌓이면 루게릭병이나 전측두엽 치매를 일으키며, 암세포의 돌연변이를 가속화하기도 합니다.

DNA 불일치 복구 (DNA Mismatch Repair): 세포가 분열하여 DNA를 복제할 때 잘못 짝지어진 염기(오타)를 찾아내어 올바르게 잘라내고 다시 붙여주는 우리 몸의 필수적인 자가 치유 시스템입니다.

루게릭병 (ALS,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운동 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되어 몸의 근육이 서서히 굳어지고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무서운 신경 퇴행성 질환입니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앓았던 병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참조
Vincent E Provasek, Albino Bacolla, Suganya Rangaswamy, Manohar Kodavati, Joy Mitra, Issa O Yusuf, Vikas H Malojirao, Velmarini Vasquez, Gavin W Britz, Guo-Min Li, Zuoshang Xu, Sankar Mitra, Ralph M Garruto, John A Tainer, Muralidhar L Hegde. RNA/DNA-binding protein TDP43 regulates DNA mismatch repair genes with implications for genome stability. Nucleic Acids Research, 2025; 53 (18) DOI: 10.1093/nar/gkaf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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