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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미스터리, 우리 몸을 지키는 ‘착한 면역 세포’의 재발견
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6년 04월 30일 19:39 분입력   총 52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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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론 케터링 암센터, 대장암 치료의 판도를 바꿀 조절 T세포의 '두 얼굴' 규명
대장암과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환우와 가족들에게, 최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면역항암제'의 소식은 희망이자 동시에 작은 아쉬움이기도 했다. 전체 대장암 환자의 약 15%에 해당하는 특정 유전자 특성(MSI-H)을 가진 환자들에게는 면역항암제가 기적 같은 효과를 발휘하지만, 나머지 80~85%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형태의 대장암(현미부수체 안정형, MSS) 환자들에게는 기존 면역항암제가 좀처럼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전 세계의 뛰어난 과학자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이 단단한 장벽을 우회할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 있다. 최근 미국 최고의 암 전문 병원 중 하나인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SK) 연구팀이 세계적인 학술지 <이뮤니티(Immunity)>에 발표한 연구는, 대장암 생태계의 오랜 수수께끼를 풀어내며 대다수 대장암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면역 치료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주었다.

면역학계의 오랜 미스터리, "대장암은 왜 예외일까?"
우리 몸의 면역 체계에는 ‘조절 T세포(Treg)’라는 특수한 경찰관이 있다. 이들의 원래 임무는 면역 세포들이 흥분해서 정상 세포나 유익한 세균, 음식물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면역 관용)을 한다.

하지만 암이 발생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종양은 이 조절 T세포를 교묘하게 이용해 암세포를 향한 면역 체계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패로 삼는다. 따라서 대부분의 암(유방암, 폐암 등)에서는 종양 주변에 조절 T세포가 많을수록 암이 더 빨리 자라고 환자의 예후가 나빠지는 것이 의학계의 확고한 상식이었다.

그런데 오직 ‘대장암’에서만 이 공식이 완전히 빗나갔다. 대장암 환자들은 이상하게도 종양에 조절 T세포가 많을수록 오히려 생존 기간이 더 길고 예후가 좋은 현상이 반복해서 관찰된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 의학자들은 “왜 대장암만 면역계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일까?”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MSK 연구팀은 마침내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아냈다.

조절 T세포의 두 얼굴: ‘수호자’와 ‘배신자’
MSK 연구팀의 알렉산더 루덴스키(Alexander Rudensky) 박사팀은 대장암에 존재하는 조절 T세포들을 분자 단위로 아주 정밀하게 쪼개어 분석했다. 그 결과, 대장암 속의 조절 T세포는 모두 같은 편이 아니라, 서로 정반대의 역할을 하는 두 가지의 다른 종류(아형)로 나뉘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암의 성장을 막아주는 ‘착한 조절 T세포(IL-10 양성)’다. 이 세포들은 주로 종양 주변의 건강한 조직에 머물며 ‘인터루킨-10(IL-10)’이라는 유익한 물질을 뿜어낸다. 이 물질은 종양에게 자라나라는 신호를 보내는 나쁜 세포(Th17)의 활동을 억제하여, 결과적으로 암 덩어리가 커지는 것을 늦춰주는 든든한 ‘수호자’ 역할을 한다. 연구진이 이 착한 세포를 실험적으로 제거하자 대장암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자라났다.

두 번째는 암의 성장을 돕는 ‘나쁜 조절 T세포(IL-10 음성)’다.
이 세포들은 종양의 가장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리고 우리 몸에서 가장 강력하게 암세포를 암살하는 ‘CD8+ T세포’의 팔다리를 묶어버려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철저히 암세포의 편에 선 ‘배신자’인 셈이다. 이 나쁜 세포들을 제거하자 종양의 크기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실제 100명이 넘는 대장암 환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도 정확히 일치했다. 착한 조절 T세포(IL-10 양성)를 많이 가진 환자일수록 훨씬 더 오래 생존했고, 반대로 나쁜 조절 T세포(IL-10 음성)가 많은 환자는 예후가 좋지 않았다. 대장암의 조절 T세포가 많으면 경과가 좋았던 이유는, 바로 이 ‘착한 수호자 세포’들이 암세포와 맹렬히 싸워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밀 타격의 시대, ‘CCR8’을 조준하라
적과 아군이 명확하게 구분되었으니, 이제 남은 과제는 하나다. 종양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나쁜 배신자 세포’만 골라내어 정밀 타격하고, 우리를 돕는 ‘착한 수호자 세포’는 안전하게 살려두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나쁜 조절 T세포들의 표면에만 아주 많이 돋아나 있는 특정 단백질 꼬리표를 찾아냈다. 바로 ‘CCR8’라는 단백질이다.

이 발견은 다가올 대장암 치료에 엄청난 전략적 이점을 제공한다. 융단폭격처럼 모든 면역 세포를 억제하거나 자극하는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오직 이 ‘CCR8’ 꼬리표를 단 나쁜 조절 T세포만 족집게처럼 찾아내어 제거하는 항체(약물)를 투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암세포를 호위하던 방패막이만 쏙 빠지게 되어,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다시 힘을 얻고 대장암 세포를 강력하게 섬멸할 수 있게 된다.

루덴스키 박사는 “MSK가 선도하고 있는 이 ‘CCR8 표적 항체 치료’ 아이디어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임상시험에 돌입하여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이 혁신적인 치료법이 가장 흔한 형태의 대장암(MSS) 환자들에게도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강력한 과학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고 설명했다.

간 전이암과 다른 암종으로의 확장
연구팀은 이 발견이 대장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피부, 위장, 구강, 인후 등 우리 몸의 최전선에서 외부 환경과 맞서 싸우는 ‘장벽 조직’에서 발생하는 다른 암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면역 패턴(착한 세포와 나쁜 세포의 공존)이 관찰되었다. 즉, 이 치료 원리가 훗날 위암이나 피부암 치료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대장암이 간으로 전이된 '전이암'의 경우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간으로 퍼진 종양 속에는 착한 세포보다 나쁜 조절 T세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경우에는 세밀하게 구분할 것 없이 종양 내의 모든 조절 T세포를 일거에 소탕하는 것이 암의 크기를 줄이는 데 훨씬 효과적이었다. 이는 원발암인지 전이암인지, 암이 어느 장기에 위치해 있는지에 따라 치료 전략이 세심하게 맞춤화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절망의 벽을 허무는 과학의 진보
대부분의 대장암 환우들이 기존 면역 항암제의 혜택을 받지 못해 느꼈던 상실감과 막막함. 그러나 과학자들은 그 견고해 보이던 절망의 벽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마침내 그 벽을 무너뜨릴 아주 미세하고 결정적인 ‘균열’을 찾아냈다.

우리 몸속에 암과 싸워주는 든든한 '착한 면역 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나쁜 녀석들만 골라내는 'CCR8'이라는 명확한 표적을 찾아냈다는 사실은, 머지않은 미래에 대다수 대장암 환자들에게도 부작용은 적고 효과는 뛰어난 새로운 면역 치료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음을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병마와 싸우는 길고 외로운 여정 속에서, 당신의 몸속 착한 면역 세포들과 전 세계의 뛰어난 과학자들이 언제나 당신의 든든한 우군으로 함께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편집실에서] 쏙쏙 이해되는 의학 용어 사전
조절 T세포 (Regulatory T cell / Treg): 면역 체계가 과도하게 흥분하지 않도록 진정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정상일 때는 우리 몸을 지키지만, 암세포에 속아 넘어가면 암세포를 공격하려는 다른 면역 세포들을 가로막는 방패막이가 되기도 합니다.

현미부수체 안정형 (MSS) 대장암: 전체 대장암의 약 80~85%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유형입니다. 유전자가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역설적으로 기존의 면역관문억제제(면역 항암제)가 암세포를 잘 알아보지 못해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CCR8: 대장암의 성장을 돕는 '나쁜 조절 T세포'의 겉면에만 유독 많이 붙어 있는 특정 단백질입니다. 미래의 항암제는 이 표적만 찾아가서 공격하는 스마트 폭탄(항체) 역할을 하게 됩니다.

[참고 자료]
Xiao Huang et al., "Regulatory T cells exhibit distinct roles in colorectal cancer", Immunity, 2026.
뒤로월간암 202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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