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
-> 현대의학
기억 지우는 뇌 속의 ‘죽음 스위치’, 끄는 법 발견
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6년 04월 30일 19:44 분입력   총 83명 방문
AD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연구진, 알츠하이머를 멈추는 차단제 발견
나이가 한 해 두 해 늘어갈수록 우리 마음속에 가장 짙게 드리우는 두려움은 단연 ‘치매(알츠하이머병)’일 것이다. 어제저녁에 먹은 반찬이 기억나지 않거나, 늘 쓰던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깜빡할 때마다 ‘혹시 나도 치매가 아닐까?’ 하며 덜컥 겁부터 나는 것이 어르신들의 당연한 심정이다. 평생을 간직해 온 소중한 가족과의 추억과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지워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서글픈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다. 전 세계의 뛰어난 과학자들이 어르신들의 맑은 기억을 지켜내기 위해 밤낮없이 두뇌의 비밀을 풀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Heidelberg University)의 힐마르 바딩(Hilmar Bading) 교수 연구팀과 중국 산둥 대학교 연구진이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치매를 유발하는 뇌 속의 ‘죽음 스위치’를 찾아내고 이를 꺼버리는 놀라운 약물을 발견했다. 이 반가운 소식은 세계적인 정신의학 저널 <분자 정신의학(Molecular Psychiatry)>에 발표되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 뇌세포의 통신망에 찾아온 치명적인 불청객
우리의 뇌 속에는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가 살고 있다. 이 신경세포들은 서로 손을 꼭 맞잡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우리가 생각하고, 기억하고, 배우게 해준다. 이렇게 세포들이 손을 맞잡고 소통하는 연결 부위를 ‘시냅스(Synapse)’라고 부른다. 신경세포의 표면에는 다른 세포가 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이는 일종의 안테나인 ‘NMDA 수용체’가 달려 있다. 이 안테나가 정상적인 위치(시냅스 안쪽)에서 잘 작동하면, 뇌세포가 튼튼하게 살아남고 우리의 기억력도 생생하게 유지된다. 그런데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면 뇌 속에서 아주 기이하고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한다.

정상적인 연결 부위를 벗어난 엉뚱한 곳에 있던 안테나(NMDA)가, 뇌 속에 있는 또 다른 평범한 단백질인 ‘TRPM4’와 아주 단단하게 들러붙어 버리는 것이다. 바딩 교수는 이 둘의 잘못된 만남을 가리켜 “뇌세포를 죽이는 ‘죽음의 복합체(Death Complex)’”라고 불렀다. 멀쩡하던 두 단백질이 엉뚱한 곳에서 짝을 맺는 순간, 뇌세포를 파괴하고 기억을 지우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스위치’로 돌변해 버리는 것이다.

2. 죽음의 스위치를 갈라놓는 마법의 쐐기, ‘FP802’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쥐들의 뇌를 살펴보니, 건강한 쥐들에 비해 이 무서운 ‘죽음의 복합체(잘못 붙어버린 안테나와 스위치)’가 엄청나게 많이 생겨나 있었다. 병이 깊어질수록 뇌세포들은 스스로 목숨을 잃고 뇌가 쪼그라들었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이 둘을 떼어놓을 방법을 찾을 차례다. 연구팀은 이전에 자신들이 개발해 두었던 ‘FP802’라는 특수한 약물을 치매 쥐들에게 투여해 보았다.

이 약물은 마치 단단히 물린 톱니바퀴 사이에 강력한 ‘쐐기’를 박아 넣는 것과 같은 역할을 했다. FP802가 뇌로 들어가자마자, 찰싹 달라붙어 있던 두 단백질(NMDA와 TRPM4)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둘의 연결을 완벽하게 끊어버린 것이다. 죽음의 스위치가 마침내 꺼지는 순간이었다.

3. 다시 돌아온 쥐들의 기억력, 그리고 사라진 뇌 속 쓰레기
죽음의 스위치가 꺼지자, 쥐들의 뇌 속에서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 것은 물론이고, 신경세포들이 파괴되는 현상도 딱 멈추었다.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발전소(미토콘드리아)도 다시 건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장 기쁜 소식은 쥐들의 ‘학습 능력’과 ‘기억력’이 건강한 쥐들과 다름없이 온전하게 보존되었다는 점이다. 미로를 헤매던 쥐들이 다시 길을 찾고 기억을 되살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치매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뇌 속의 찌꺼기, 즉 ‘베타-아밀로이드(Beta-amyloid)’라는 독성 쓰레기가 뇌에 쌓이는 양도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죽음의 스위치를 끄는 것만으로도 치매의 근본적인 원인까지 도미노처럼 함께 해결되는 엄청난 효과를 본 것이다.
4. 찌꺼기를 치우는 대신, 찌꺼기 공장의 문을 닫다
이번 연구가 전 세계 의학계의 찬사를 받는 이유는 치매를 대하는 기존의 방식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대부분의 치매 치료제들은 뇌 속에 이미 쌓인 찌꺼기(베타-아밀로이드)를 청소하는 데만 몰두해 왔다. 하지만 청소만으로는 이미 죽어버린 뇌세포를 살려낼 수 없어 치료에 한계가 컸다.

반면, 이번에 발견된 방식은 뇌세포를 죽이고 찌꺼기를 만들어내는 ‘공장의 스위치(죽음의 복합체)’ 자체를 아예 꺼버리는 방식이다. 바딩 교수는 “찌꺼기를 치우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뇌세포가 죽는 근본적인 과정을 차단하여 뇌를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 약물은 치매뿐만 아니라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무서운 병인 ‘루게릭병(ALS)’을 앓는 쥐 모델에서도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탁월한 효과를 증명했다. 뇌와 신경이 망가지는 여러 무서운 노인성 질환들을 동시에 막아낼 수 있는 ‘만능 방패’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셈이다.

5. 소중한 기억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내일
물론 당장 내일 동네 병원에 가서 이 ‘FP802’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쥐 실험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사람의 몸속에서도 부작용 없이 안전하게 작동하는지 확인하려면 독성 검사와 수년에 걸친 꼼꼼한 임상시험이라는 긴 산을 넘어야 한다. 연구팀 역시 제약 회사(FundaMental Pharma)와 손을 잡고 사람에게 쓰일 수 있는 완벽한 신약을 만들기 위해 쉼 없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 당장 약을 먹을 수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치매가, 이제는 스위치를 끄고 켤 수 있는 조절 가능한 질병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진보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의 치열한 땀방울은, 우리 어르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따뜻한 추억들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온전하고 맑게 간직할 수 있는 눈부신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두려움은 잠시 내려놓고, 매일 아침 가벼운 산책과 즐거운 대화로 오늘 하루의 뇌 건강을 활기차게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과학은 반드시 치매라는 병을 정복해 낼 것이다.

[Box] 어르신들을 위한 쉬운 뇌 건강 용어 사전
시냅스 (Synapse):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손을 꼭 맞잡고 있는 '연결 부위'를 말합니다. 이 손맞잡음이 튼튼해야 기억력이 좋아집니다.

NMDA 수용체: 뇌세포 표면에 돋아 있는 안테나입니다. 다른 세포가 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여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고 기억하게 해줍니다.

죽음의 복합체 (NMDAR/TRPM4 복합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을 때, 뇌세포의 안테나(NMDA)가 엉뚱한 단백질(TRPM4)과 불량하게 결합해 버린 덩어리입니다. 이것이 뇌세포를 죽이는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베타-아밀로이드: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 쌓이는 나쁜 찌꺼기(독성 단백질)입니다. 뇌 속에 이 쓰레기가 많아지면 뇌세포가 숨을 쉬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참조]
Jing Yan, Xiaohui Yang, Guilin Li, Omar A. Ramirez, Anna M. Hagenston, Zhe-Yu Chen, Hilmar Bading. The NMDAR/TRPM4 death complex is a major promoter of disease progression in the 5xFAD mouse model of Alzheimer’s disease. Molecular Psychiatry, 2025; 31 (2): 635 DOI: 10.1038/s41380-025-03143-5
뒤로월간암 2026년 4월호
추천 컨텐츠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