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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음성 유방암을 멈춰 세우는 기적의 분자 발견
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6년 04월 30일 19:47 분입력   총 107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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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의 에너지 공장을 파괴하는 신물질 'SU212' 개발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우들이 주치의의 입술만 타들어 가며 쳐다보는 순간이 있다. 바로 내 암의 ‘종류(아형)’가 무엇인지 결과를 듣는 시간이다. 만약 그 결과가 ‘삼중음성 유방암(Triple-Negative Breast Cancer, TNBC)’이라면 환자와 의료진 모두 깊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전체 유방암의 약 15%를 차지하는 이 암은, 이름 그대로 암세포 표면에 있어야 할 세 가지 수용체(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HER2)가 모두 ‘음성(없음)’인 가장 독하고 공격적인 암이다. 표적이 없으니 그 훌륭하다는 최신 표적 항암제나 호르몬 치료제가 전혀 듣지 않고, 오직 독한 화학 항암제에만 의존해야 해서 재발과 전이의 두려움이 가장 큰 절망의 암으로 불려 왔다.

그런데 최근, 이 무자비한 삼중음성 유방암의 발목을 꽉 잡고 성장을 완전히 멈춰 세울 획기적인 열쇠가 발견되었다.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학(OHSU) 나이트 암 연구소의 산제이 말호트라(Sanjay V. Malhotra) 교수팀이 이 독종 암세포를 무너뜨릴 새로운 분자를 개발하여 국제 학술지 <셀 리포트 메디신(Cell Reports Medicine)>에 발표한 것이다.

암세포의 탐욕스러운 식탐, ‘포도당’을 노려라
표적이 없어 쏠 수 없다면, 암세포가 먹고사는 ‘밥줄’을 끊어버리면 어떨까? 연구팀은 삼중음성 유방암 세포의 유별난 식탐에 주목했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보다 훨씬 빠르게 분열하고 성장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때 암세포가 가장 좋아하는 주식(에너지원)이 바로 핏속을 떠다니는 당분, 즉 ‘포도당’이다. 암세포는 이 포도당을 닥치는 대로 빨아들인 뒤 에너지로 바꾸기 위해 ‘에놀라아제 1(ENO1)’이라는 특수한 소화 효소를 정상 세포보다 기형적으로 많이 뿜어낸다. 연구팀은 이 ENO1 효소야말로 삼중음성 유방암이 그토록 맹렬하게 증식할 수 있는 숨겨진 아킬레스건이라고 확신했다.

암세포의 효소를 산산조각 내는 암살자, ‘SU212’
연구팀은 이 에놀라아제 1(ENO1) 효소만 정밀하게 찾아내어 망가뜨리는 새로운 합성 분자 ‘SU212’를 개발했다.
이 분자의 작동 원리는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암살자와 같다. 인간의 삼중음성 유방암 세포를 이식한 쥐(인간화 마우스 모델)에게 이 SU212 분자를 투여하자, 분자들은 핏속을 돌아다니다가 암세포가 뿜어내는 ENO1 효소에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SU212가 달라붙은 효소는 그 즉시 산산조각이 나며 산화되어 버렸다. 포도당을 에너지로 바꿔줄 핵심 효소가 파괴되자, 암세포는 아무리 포도당을 먹어 치워도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고 결국 굶어 죽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쥐의 몸속에 있던 공격적인 유방암 덩어리의 성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다른 장기로 퍼져나가는 치명적인 전이마저 강력하게 억제되었다.

당뇨병 동반 환자에게 더욱 빛나는 맞춤형 전략
말호트라 교수는 이 치료법이 당뇨병과 같은 ‘대사 질환’을 함께 앓고 있는 유방암 환자들에게 특히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뇨병 환자들은 핏속에 포도당(혈당)이 만성적으로 넘쳐나는 상태다. 이 넘쳐나는 포도당은 암세포에게 무한 리필 뷔페를 제공하는 것과 같아서, 당뇨를 동반한 암 환자들은 암의 진행 속도가 더 빠르고 치료가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SU212 분자는 암세포가 이 포도당을 소화하는 경로 자체를 차단해 버리기 때문에, 혈당이 높은 환경에서도 암세포가 에너지를 얻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방어막이 되어줄 수 있다.

유방암을 넘어 췌장암, 뇌종양까지 조준하다
이 마법 같은 분자의 활약은 삼중음성 유방암에서만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에놀라아제 1(ENO1) 효소를 과도하게 뿜어내어 에너지를 얻는 얌체 같은 암세포는 비단 유방암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가장 치명적인 암으로 꼽히는 췌장암, 뇌종양(신경교종), 그리고 난치성 갑상선암 역시 이 효소에 생존을 크게 의존하고 있다. 말호트라 교수는 “이 분자가 향후 췌장암과 뇌종양 등 다른 치명적인 암들의 치료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에도 똑같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임상시험을 향한 험난하지만 가슴 뛰는 여정
물론 이제 막 동물 실험에서 놀라운 성과를 입증했을 뿐이다. 이 SU212 분자가 실제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투여되는 ‘기적의 신약’으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미식품의약국(FDA)의 엄격한 승인과 수많은 환자가 참여하는 대규모 임상시험이라는 크고 험난한 산을 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과 시간, 그리고 과학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립 암 연구소(NCI) 시절부터 수년간 이 분자 하나에 매달려온 말호트라 교수는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이 위대한 과학적 발견들이 반드시 실제 환자들을 살리는 혜택으로 번역되어 전달되기를 간절히 원한다.”라고 말했다.

표적이 없다는 이유로 가장 독하고 무자비한 암으로 군림했던 삼중음성 유방암. 하지만 인간의 집념은 암세포의 탐욕스러운 식탐(대사 과정)을 역이용하는 가장 창의적이고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어냈다. 암세포의 밥줄을 끊어 굶겨 죽이는 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망 속에 있던 삼중음성 유방암 환우들과 난치암 환우들에게 머지않아 완치라는 가장 아름다운 기적을 선사해 줄 것임을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Box] 쏙쏙 이해되는 유방암 용어 사전
삼중음성 유방암 (TNBC): 암세포 표면에 에스트로겐 수용체,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HER2 수용체 등 세 가지 표적이 모두 없는 유방암입니다. 항호르몬제나 표적 항암제를 쓸 수 없어 유방암 중에서도 가장 예후가 나쁜 '독종'으로 불립니다.

에놀라아제 1 (ENO1): 세포가 포도당을 분해해 에너지를 만들 때 돕는 필수 소화 효소입니다. 삼중음성 유방암 세포는 빨리 자라기 위해 이 효소를 비정상적으로 많이 만들어냅니다.

SU212: 이번 연구에서 개발된 새로운 후보 물질입니다. 암세포의 에너지 공장인 에놀라아제 1 효소에 달라붙어 이를 파괴함으로써,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암살자' 역할을 합니다.

[참조]
Dhanir Tailor, Fernando Jose Garcia-Marques, Abel Bermudez, Annah S. Rolig, Benedikt Grau, Arpit Dheeraj, Dhanya K. Nambiar, Wenqi Li, Kirsten Stefan, Shawn Campbell, Sharon J. Pitteri, Sanjay V. Malhotra. Non-orthosteric inhibition of enolase 1 impedes growth of triple-negative breast cancer. Cell Reports Medicine, 2025; 6 (11): 102451 DOI: 10.1016/j.xcrm.2025.10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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