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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종양에 주사했더니, 온몸 암세포 사라져
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6년 04월 30일 19:49 분입력   총 92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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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양 직접 주사로 전이암을 소멸시키는 '전신 면역 반응' 확인
암이 무서운 가장 큰 이유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전이' 때문이다. 간, 폐, 뼈, 피부 등 전신에 다발성으로 퍼진 말기 전이암은 수술로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해 치료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만약 온몸에 퍼진 수십 개의 암 덩어리 중, 피부 겉면에 드러난 단 한 개의 종양에만 약을 주사했는데 나머지 온몸의 암 덩어리들까지 모두 연기처럼 사라지는 마법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 놀라운 기적이 실제 임상시험 환자들에게서 일어났다. 미국 록펠러 대학교(Rockefeller University)의 제프리 라베치(Jeffrey V. Ravetch) 교수팀과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공동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캔서 셀(Cancer Cell)>에 발표한 이 혁신적인 연구 결과는, 면역 항암 치료의 한계를 뛰어넘어 암 정복을 향한 위대한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20년의 딜레마: 강력하지만 너무 위험했던 양날의 검, ‘CD40’
이 기적의 중심에는 ‘CD40’이라는 면역 세포의 수용체(안테나)가 있다. CD40은 우리 몸의 면역 세포 표면에 달려 있는데, 이 안테나의 스위치를 켜주면 면역 체계가 강력하게 각성하여 암세포를 무자비하게 공격하기 시작한다. 과학자들은 지난 20년 동안 이 CD40의 스위치를 켜는 약(작용제 항체)을 개발하기 위해 매달려 왔다. 하지만 결과는 늘 참담했다. 약을 혈관(정맥 주사)을 통해 온몸에 투여하다 보니, 암세포 주변의 면역 세포뿐만 아니라 온몸의 정상 세포들까지 이 약을 흡수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극심한 전신 염증, 치명적인 간 손상, 혈소판 감소 등 환자가 버틸 수 없는 무서운 부작용이 속출했다. 아무리 암을 잘 죽여도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만큼 독성이 강해 쓸 수가 없었던 ‘양날의 검’이었다.

발상의 전환: 약의 구조를 바꾸고, 혈관 대신 ‘종양’을 직접 찌르다
2018년, 라베치 교수팀은 이 한계를 돌파할 두 가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첫째, 기존의 약물 구조를 정교하게 재설계하여 암세포를 향한 면역 공격력을 무려 10배나 강력하게 끌어올린 새로운 항체 ‘2141-V11’을 만들어냈다. 둘째,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약을 투여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링거를 통해 온몸의 핏속으로 약을 흘려보내는 대신, 바깥에서 만져지는 암 덩어리(종양) 한가운데에 주사기를 찔러 약을 직접 주입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종양에만 약을 직접 찔러 넣자 전신 부작용과 독성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매우 안전하게 면역 세포의 스위치만 켤 수 있게 되었다.

기적의 1상 임상시험: 온몸의 암이 눈 녹듯 사라져
안전성을 확인한 연구팀은 흑색종, 유방암, 신장암 등 치료가 매우 까다로운 말기 전이암 환자 12명을 대상으로 대망의 임상 1상 시험에 돌입했다. 결과는 연구진의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경이로웠다. 환자 12명 중 절반인 6명의 환자에게서 전신의 종양 크기가 줄어들었으며, 그중 2명은 몸속에 있던 모든 암세포가 완벽하게 사라지는 ‘완전 관해(Complete Remission)’ 상태에 도달했다. 완전 관해에 도달한 두 환자는 각각 악성 흑색종과 전이성 유방암을 앓고 있었다.

라베치 교수는 당시의 놀라움을 이렇게 회상했다. “흑색종 환자분은 다리와 발 전체에 수십 개의 전이된 암 덩어리가 퍼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중 허벅지에 있는 딱 하나의 종양에만 여러 번 약을 주사했죠. 그런데 놀랍게도 주사를 맞은 종양뿐만 아니라, 아무런 약도 닿지 않았던 발과 다리의 나머지 암 덩어리들이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유방암 환자분 역시 피부, 간, 폐 등 온몸에 암이 퍼져 있었지만, 피부 쪽 종양 하나에만 주사를 놓았음에도 전신의 모든 암이 완벽하게 소멸했습니다.”

주사 맞은 곳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진 다른 암까지 연쇄적으로 파괴되는 이 놀라운 현상을 의학계에서는 ‘전신 면역 반응(또는 압스코팔 효과)’이라고 부른다. 국소 주사만으로 전신 치료 효과를 거둔, 임상 치료 역사상 매우 드물고 극적인 결과였다.

암세포 소굴에 세워진 면역 군대의 ‘최전방 훈련소’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연구팀이 주사를 맞은 종양의 내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자, 그 해답이 나타났다. 약을 맞은 종양 내부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약물의 자극을 받은 수많은 면역 세포(T세포, B세포, 수지상세포 등)들이 종양 안으로 물밀듯 쏟아져 들어와, 암세포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자신들만의 거대한 훈련 진지를 구축한 것이다. 이를 의학 용어로 ‘3차 림프 구조(TLS, Tertiary Lymphoid Structures)’라고 부른다.

이 훈련소(TLS)에 모인 면역 세포들은 암세포의 몽타주(생김새)를 철저하게 학습한다. 그리고 훈련을 마친 강력한 특수 부대(면역 세포)들이 종양을 빠져나와 혈관을 타고 온몸을 순찰하며, 멀리 간이나 폐에 숨어있던 똑같은 암세포들을 찾아내어 모조리 사살해 버린 것이다. 약이 퍼진 것이 아니라, 훈련된 ‘내 몸의 면역 군대’가 전신으로 퍼져나가 암을 정벌한 통쾌한 승리였다.

암 정복을 향한 위대한 발걸음
물론 이 기적 같은 소식 앞에서도 우리는 차분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 면역 항암제는 평균적으로 전체 환자의 약 25~30%에게만 효과를 보이며, 이 약물 역시 모든 환자에게 마법처럼 작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작은 성공은 앞으로 나아갈 거대한 문을 열어젖혔다. 연구팀은 현재 전립선암, 방광암, 교모세포종 등 더 다양한 난치암 환자 약 200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2상 임상시험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왜 어떤 환자에게는 기적이 일어나고 어떤 환자에게는 반응이 없는지 그 차이를 세밀하게 분석하여, 치료의 성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퍼즐을 맞춰나가고 있다.

"단 하나의 종양을 찔러 온몸의 암을 무너뜨린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점차 현실의 데이터로 증명되고 있다. 수많은 과학자의 끈질긴 집념과 도전이, 머지않은 미래에 말기 전이암 환우들도 부작용의 고통 없이 완치의 기적을 일상처럼 누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임을 매우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절망의 끝에서 피어나는 과학의 진보가 환우들의 곁에 든든한 동아줄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Box] 쏙쏙 이해되는 최첨단 면역 항암 용어
CD40 작용제: 우리 몸의 면역 세포(군대)가 몽비몽사몽 졸고 있을 때, 스위치를 강하게 눌러 전투태세로 각성시키는 일종의 '면역 깨우기 알람' 역할을 하는 약물입니다.

압스코팔 효과 (Abscopal Effect): 국소 부위(종양 딱 한 곳)에만 방사선이나 약물 치료를 했는데, 면역 체계가 전신으로 활성화되면서 치료를 전혀 하지 않은 멀리 떨어진 장기의 암세포까지 덩달아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기적 같은 '전신 면역 반응'을 뜻합니다.

3차 림프 구조 (TLS): 림프절(면역 세포들의 모임 장소)이 아닌 암 종양 한가운데에, 면역 세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만든 임시 군사 기지(훈련소)입니다. 종양 내부에 이 구조가 만들어지면 항암 치료의 성공률이 극적으로 올라갑니다.

참조:
Juan C. Osorio, David A. Knorr, Polina Weitzenfeld, Lucas Blanchard, Ning Yao, Maria Baez, Carlo Sevilla, Meghan DiLillo, Jahan Rahman, Ved P. Sharma, Jacqueline Bromberg, Michael A. Postow, Charlotte Ariyan, Mark E. Robson, Jeffrey V. Ravetch. Fc-optimized CD40 agonistic antibody elicits tertiary lymphoid structure formation and systemic antitumor immunity in metastatic cancer. Cancer Cell, 2025; 43 (10): 1902 DOI: 10.1016/j.ccell.2025.07.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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