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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양 속 ‘미생물 지문’ 발견, 맞춤 치료의 새 길
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6년 05월 29일 16:39 분입력   총 76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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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만의 고유한 미생물 생태계 확인
대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환우들이 치료 과정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내 몸속의 암세포는 얼마나 독한 성질을 가졌을까?”, 그리고 “나에게 가장 잘 듣는 항암제는 무엇일까?”일 것이다. 똑같은 기수의 대장암 환자라도 어떤 분은 치료 경과가 아주 좋고, 어떤 분은 재발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암세포의 크기나 유전자 돌연변이만을 보고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최근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UEA)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 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발표한 놀라운 연구 결과는, 암세포 자체뿐만 아니라 종양 속에 숨어 살고 있는 ‘미생물(세균) 군단’이 암의 운명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밝혀냈다. 특히 수많은 암 중에서 오직 ‘대장암’만이 고유하고 뚜렷한 미생물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대장암 정복을 향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고 있다.

1만 1천 개의 암 데이터에서 찾아낸 대장암만의 ‘지문’
연구팀은 사람의 모든 유전자 정보를 샅샅이 읽어내는 ‘전장 유전체 분석(WGS)’ 기술을 활용해, 22가지 종류의 암을 앓고 있는 환자 1만 1천여 명의 종양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했다. 종양 조직을 떼어내어 DNA를 검사해 보면, 인간(환자)의 DNA뿐만 아니라 그 종양 속에 숨어 살고 있던 수많은 세균과 바이러스의 DNA가 함께 뒤섞여서 나온다. 연구팀은 고도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인간의 DNA를 걸러내고, 순수하게 ‘종양 속 미생물의 DNA’만 추출하여 그 분포도를 확인했다.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기존에는 모든 종류의 암이 각자 고유한 미생물 생태계를 가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 분석 결과 22가지의 암 중에서 오직 ‘대장암’만이 마치 사람의 지문(Fingerprint)처럼 아주 뚜렷하고 일관된 고유의 미생물 군집을 형성하고 있었다. 대장암 종양 속에는 다른 암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그들만의 특별한 세균 마을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동거인이 아닌, 생존을 좌우하는 조력자
그렇다면 대장암 종양 속에 사는 이 미생물들은 단순히 암세포 옆에 얹혀사는 불청객에 불과할까? 연구팀은 미생물의 종류와 환자들의 실제 치료 경과(생존율)를 꼼꼼하게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종양 속에 사는 특정 세균들이 환자의 생존율과 항암 치료 반응에 아주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뼈나 근육에 생기는 암인 ‘육종(Sarcoma)’ 환자들의 경우, 종양 속에 어떤 특정 세균이 살고 있느냐에 따라 생존율이 눈에 띄게 높아지기도 하고 반대로 경과가 나빠지기도 했다. 즉, 종양 속 미생물은 암세포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때로는 암의 성장을 돕고 때로는 면역 체계를 자극하여 암을 억제하는 등 질병의 운명을 좌우하는 강력한 ‘조력자’ 혹은 ‘방해꾼’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숨어있는 바이러스를 잡아내는 정밀 진단의 무기
이번 연구는 미생물 분석 기술이 미래의 병원에서 얼마나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연구팀은 이 유전체 분석 기술을 통해 구강암 환자의 종양 속에 숨어있던 인유두종바이러스(HPV)를 기존의 검사법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냈다. 또한, 몸속에 수십 년간 얌전히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암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희귀 바이러스(HTLV-1)까지 족집게처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에이브러햄 기하위(Abraham Gihawi) 박사는 “전장 유전체 분석(WGS) 기술이 대형 병원에 널리 보급되고 있는 만큼, 종양 속 미생물을 검사하는 이 방법은 큰 추가 비용 없이도 암 치료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아주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만의 미생물 지문을 읽는 ‘초개인화 치료’의 시대
이번 발견이 대장암 환우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앞으로 대장암 수술을 하거나 조직 검사를 받을 때, 단순히 암세포가 악성인지 아닌지만 따지는 것을 넘어 “내 대장암 덩어리 안에는 어떤 미생물들이 살고 있는가?”를 지문처럼 분석하게 될 것이다. 주치의는 이 미생물 지문을 바탕으로, 이 대장암이 앞으로 얼마나 공격적으로 변할지, 혹은 특정 표적 항암제나 면역 항암제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반응할지를 아주 높은 확률로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대장암 정복을 향한 든든한 이정표
대장(장관)은 우리 몸에서 미생물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장기이기에, 대장암과 미생물의 끈끈한 관계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세균들의 유전자까지 낱낱이 해독해 내는 현대 과학의 위대한 진보는, 이제 대장암을 그저 무서운 질병이 아닌 정밀하게 분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질병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종양 속 미생물이라는 새로운 약점을 찾아내어 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맞춤형 치료 전략을 설계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은, 고된 치료 과정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대장암 환우들에게 머지않아 부작용은 줄고 완치율은 극대화된 진정한 정밀 의료의 혜택이 찾아올 것임을 매우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편집실 메모] 쏙쏙 이해되는 최신 유전체 의학 사전
전장 유전체 분석 (Whole Genome Sequencing, WGS): 사람이나 미생물이 가진 30억 쌍의 전체 DNA 염기서열(유전자 암호)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모두 읽어내는 최첨단 해독 기술입니다. 숨어있는 질병의 원인을 찾는 데 탁월합니다.

미생물 지문 (Microbial Fingerprint):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특정 질병이나 암 종양 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세균, 바이러스 등)의 종류와 비율이 고유한 패턴을 띠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번 연구에서 대장암이 유일하게 이 뚜렷한 지문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육종 (Sarcoma): 위나 대장 같은 장기의 겉면(상피세포)이 아닌, 뼈, 연골, 근육, 지방, 혈관 등 우리 몸의 뼈대와 골격을 이루는 곳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입니다.

출처:
Abraham Gihawi, Henry M. Wood, Jeremy Clark, Justin O’Grady, Rosalind A. Eeles, David C. Wedge, G. Maria Jakobsdottir, Gkikas Magiorkinis, Andrew G. Schache, Liam Masterson, Matt Lechner, Tim R. Fenton, Terry M. Jones, Adrienne M. Flanagan, Solange De Noon, Alex Rubinsteyn, Rachel Hurst, Colin S. Cooper, Daniel S. Brewer. The landscape of microbial associations in human cancer.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 2025; 17 (814) DOI: 10.1126/scitranslmed.ads6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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