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의학상식암세포 비상식량 차단하는 비타민 B7 결핍 효과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6년 05월 29일 16:44 분입력 총 99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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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의 ‘글루타민 중독’과 대사 우회로를 끊는 새로운 메커니즘 규명
모든 생명체는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영양분을 섭취해야 한다. 이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정상 세포뿐만 아니라, 무한히 증식하려는 맹렬한 암세포도 똑같이 적용되는 절대적인 자연의 법칙이다. 암세포는 폭발적으로 분열하고 몸집을 불리기 위해 정상 세포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인다. 만약 이 암세포로 향하는 영양 공급줄을 뚝 끊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암세포는 굶어 죽을 것이다. 하지만 암세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교활해서, 하나의 공급줄이 끊기면 재빨리 다른 길을 찾아내 생존을 이어간다.
최근 스위스 로잔 대학교(Unil) 생물학 및 의학부 면역생물학과 알렉시스 주르댕(Alexis Jourdain) 교수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몰레큘러 셀(Molecular Cell)>에 발표한 연구는, 암세포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찾아내는 ‘비상식량 경로’와 이를 차단하는 ‘비타민 B7(비오틴)’의 놀라운 비밀을 밝혀내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암세포의 지독한 편식, ‘글루타민 중독’
암세포의 식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글루타민(Glutamine)’이라는 물질을 알아야 한다. 글루타민은 우리 몸에 아주 흔하게 존재하는 아미노산 중 하나로, 단백질과 DNA를 만들어내는 필수 건축 자재 역할을 한다. 놀랍게도 수많은 종류의 암세포들은 포도당만큼이나 이 글루타민을 미친 듯이 흡수하며 살아간다. 과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글루타민 중독(Glutamine addiction)’이라고 부른다. 글루타민이 없으면 암세포는 세포막을 만들지도 못하고 유전자를 복제하지도 못해 성장을 멈추게 된다.
그래서 과거 수많은 의학자들은 “암세포가 글루타민에 중독되어 있으니, 환자의 몸에서 글루타민을 차단하는 약(글루타민 억제제)을 쓰면 암을 고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임상시험을 해보니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글루타민을 차단해도 암세포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다시 증식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암세포는 어떻게 굶어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일까?
암세포의 영리한 플랜 B와 비타민 B7의 등장
연구팀의 미리암 리시(Miriam Lisci)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암세포가 굶주림을 버텨내는 그 ‘비상경로(우회로)’를 정밀하게 추적했다. 연구 결과, 글루타민(주전력)이 끊기면 암세포는 재빨리 세포 내에 남아있는 탄소 분자인 ‘피루브산(Pyruvate)’을 끌어모아 비상발전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글루타민 대신 피루브산을 땔감으로 사용하여 암세포가 분열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계속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것이 기존의 글루타민 억제제 항암 치료가 실패했던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런데 이 비상발전기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피루브산 카르복실라아제’라는 아주 특수한 효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효소가 작동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필수 부품이 바로 ‘비타민 B7(비오틴)’이다.
비타민 B7은 우리가 탈모 예방이나 피부 건강을 위해 흔히 챙겨 먹는 그 영양소다. 연구팀은 세포 내에 이 비타민 B7이 부족해지면 암세포의 비상발전기(효소)가 완전히 멈춰버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비타민 B7은 암세포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비상식량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 주는 일종의 ‘대사 면허증(Metabolic license)’이자 비상발전기의 ‘시동 키’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암세포를 멈춰 세우는 치명적인 결핍
이 발견은 항암 치료에 엄청난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준다. 암세포가 비상식량(피루브산)을 먹으려고 할 때, 우리 몸의 특정 세포 환경에서 의도적으로 ‘비타민 B7의 공급을 억제(결핍)’하게 만들면 어떻게 될까? 비상발전기의 시동 키를 빼앗긴 암세포는 우회로를 찾지 못한 채 꼼짝없이 성장을 멈추고 굶어 죽게 된다. 무조건 영양분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암세포가 생존을 위해 어떤 영양소 조합이 있어야 하는지 그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찌르는 것이 현대 대사 항암 치료의 핵심이다.
유전자 돌연변이(FBXW7)가 스스로 드러낸 암의 약점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위암, 대장암, 흑색종 등 다양한 암에서 아주 흔하게 나타나는 ‘FBXW7’이라는 유전자 돌연변이에 주목했다. (이 유전자는 최근 반려묘의 유방암 연구에서도 공통으로 발견된 아주 악명 높은 암 유발 유전자다.)
연구 결과, 이 FBXW7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환자의 암세포들은 아예 처음부터 피루브산을 사용하는 비상발전기가 망가져 있었다. 비상발전기가 없으니, 이 암세포들은 오직 주전력인 ‘글루타민’ 하나에만 100% 목숨을 걸고 극도로 의존하게 된다.
리시 박사는 “이러한 특성 덕분에 FBXW7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암 환자들은 글루타민을 차단하는 항암 치료에 아주 빠르고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환자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FBXW7 돌연변이가 확인된다면, 우회로를 걱정할 필요 없이 글루타민 억제제만으로도 탁월한 항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암세포의 대사 경로를 차단하는 지능적인 항암 전략
암세포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항암제의 공격과 영양 결핍 속에서도 놀라운 대사 유연성(Metabolic flexibility)을 발휘하며 끈질기게 생존의 길을 찾아낸다. 그렇기에 하나의 길만 막는 과거의 방식으로는 암을 온전히 정복할 수 없었다.
알렉시스 주르댕 교수는 “장기적으로 이번 연구는 암세포가 가진 대사적 약점을 훨씬 깊이 있게 이해하고, 여러 대사 경로를 동시에 억제하는 혁신적인 치료 전략을 설계하는 데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글루타민을 차단하는 동시에 비타민 B7의 대사를 조절하여 비상구마저 봉쇄하는 다중 표적 치료. 암세포의 식탐을 역이용하여 스스로 굶어 죽게 만드는 이 치밀하고 과학적인 대사 항암 전략이, 앞으로 암 환우들에게 기존 항암제의 한계를 뛰어넘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완치 길을 매우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편집실 메모] 쏙쏙 이해되는 영양 대사 용어 사전
글루타민 (Glutamine): 우리 몸의 근육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아미노산입니다. 정상 세포에도 필요하지만, 맹렬하게 증식하는 암세포가 단백질과 유전자를 만들기 위해 미친 듯이 빨아들이는 주식(에너지원)이기도 합니다.
비타민 B7 (비오틴 / Biotin): 계란 노른자, 콩, 견과류 등에 들어있는 수용성 비타민입니다. 지방과 탄수화물 대사에 필수적인데, 이번 연구를 통해 암세포가 위기 상황에서 비상식량을 쓸 때 반드시 필요한 '시동 키'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피루브산 (Pyruvate): 포도당이 세포 내에서 분해될 때 만들어지는 중간 산물입니다. 암세포는 글루타민이 떨어졌을 때 이 피루브산을 태워서 생존 에너지를 얻는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줍니다.
FBXW7 유전자: 정상일 때는 불필요한 단백질을 청소하여 암 발생을 막는 착한 유전자지만, 돌연변이가 생기면 세포를 암으로 몰아가는 악명 높은 유전자입니다.
참조:
Miriam Lisci, Fanny Vericel, Yifan Liu, Hector Gallart-Ayala, Julijana Ivanisevic, Owen S. Skinner, Alexis A. Jourdain. Functional nutrient-genetic profiling reveals biotin and FBXW7 are essential to bypass glutamine addiction. Molecular Cell, 2026; 86 (5): 901 DOI: 10.1016/j.molcel.2026.02.002뒤로월간암 2026년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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