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현대의학암세포 키우고 면역망 피하는 ‘마스터 스위치’ 차단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6년 06월 30일 14:44 분입력 총 78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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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NYU 랑곤 헬스 연구진, 흑색종 성장을 지휘하는 HOXD13 단백질의 이중 역할 규명
피부에 발생하는 암 중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전이가 빨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악성 흑색종(Melanoma)’. 이 흑색종이 우리 몸속에서 그토록 악착같이 살아남고 세력을 넓힐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암세포가 자신에게 영양분을 공급할 ‘혈관’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동시에 우리 몸의 경찰인 ‘면역 세포’의 눈을 교묘하게 가리는 두 가지 은밀한 생존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도대체 암세포 내부의 어떤 스위치가 켜지기에 이토록 복잡한 생존 전술이 한꺼번에 작동하는 것인지는 오랫동안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미국 뉴욕대학교 랑곤 헬스(NYU Langone Health) 펄머터 암센터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캔서 디스커버리(Cancer Discovery)>에 발표한 연구가 이 오랜 미스터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연구진은 흑색종 세포 내부에서 이 모든 악행을 총지휘하는 이른바 ‘마스터 스위치(Master Switch)’ 역할을 하는 특정 단백질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암세포의 전용 보급로를 뚫어주는 총사령관, ‘HOXD13’
연구팀이 지목한 마스터 스위치의 정체는 ‘HOXD13’이라는 이름의 전사 인자(Transcription factor) 단백질이다. 전사 인자란, DNA에 적힌 유전자 암호를 읽어내어 특정 생체 기능을 켜고 끄는 지휘관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연구 결과, 흑색종 세포 내에서 이 HOXD13 단백질의 활동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 암세포를 살찌우기 위한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된다. 암세포가 쑥쑥 자라려면 막대한 산소와 영양분이 필요한데, HOXD13은 VEGF, SEMA3A 등의 다양한 생물학적 신호를 활성화하여 종양 주변에 새로운 핏줄(혈관)을 무성하게 만들어낸다. 마치 적군이 식량과 무기를 공급받기 위해 자신들만의 전용 ‘보급로(고속도로)’를 마구잡이로 건설하는 것과 같다. 이 보급로가 뚫리면서 피부암 세포는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면역 세포의 접근을 막는 '투명 방패'의 형성
더욱 소름 돋는 사실은 이 마스터 스위치(HOXD13)가 단순히 암을 먹여 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몸의 방어 체계를 무력화하는 역할까지 동시에 수행한다는 점이다. 우리 몸의 혈액 속에는 암세포를 찾아내어 직접 파괴하는 강력한 특수부대인 ‘세포독성 T세포’가 존재한다. 그런데 연구팀이 흑색종 환자들을 분석해 보니, HOXD13 수치가 높은 환자일수록 핏속에 이 T세포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고, 심지어 종양 근처로는 아예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HOXD13이 암세포 주변에 ‘아데노신(Adenosine)’이라는 물질을 짙게 뿌리도록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종양 주변에 짙게 깔린 아데노신은 마치 끈적끈적한 늪이나 투명한 방패 같은 ‘면역 장벽’ 역할을 한다. 암세포를 죽이러 달려오던 T세포들은 이 아데노신 장벽에 부딪혀 속도가 느려지고, 결국 종양 안으로 진입하지 못한 채 무력화되고 마는 것이다.
마스터 스위치를 끄면 벌어지는 일들
적의 총사령관을 알았으니, 이제 그 스위치를 꺼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할 차례다. 미국, 브라질, 멕시코 등 다국적 연구진이 200명 이상의 흑색종 환자 종양 샘플을 분석하고, 쥐 실험을 통해 HOXD13 단백질의 활동을 강제로 억제해 보았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암세포가 새로운 혈관을 만들지 못해 성장이 눈에 띄게 둔화되며 종양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투명 방패(아데노신 장벽)가 걷히면서 밖에서 헤매던 강력한 T세포들이 다시 종양 내부로 거침없이 침투하여 암세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스위치를 차단함으로써 암세포의 ‘보급로’와 ‘방패’를 동시에 부숴버린 통쾌한 결과였다.
세 가지 무기를 합친 ‘복합 치료’의 새로운 청사진
이번 연구는 피부암은 물론 다양한 악성 종양을 치료하는 새로운 전략의 밑그림을 제시한다. 연구를 이끈 에바 에르난도-몽헤(Eva Hernando-Monge) 교수는 “이 데이터는 혈관 생성(보급로)을 억제하는 약물과 아데노신 장벽(투명 방패)을 걷어내는 약물을 함께 사용하는 복합 치료가 HOXD13이 활성화된 흑색종 환자들에게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지지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임상 현장에서는 종양의 혈관을 막거나 아데노신을 억제하는 약물들이 활발히 테스트되고 있으며, 이를 환자의 면역력을 끌어올리는 기존의 ‘면역 항암제’와 함께 투여하는 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다. 연구팀은 이 새로운 치료 공식이 흑색종뿐만 아니라 HOXD13 수치가 높은 뇌종양(교모세포종)이나 육종, 골육종 등 다른 까다로운 암에도 널리 적용될 수 있는지 후속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보이지 않는 적의 전략을 꿰뚫다
암세포는 끊임없이 진화하며 우리의 눈을 속이려 하지만, 인류의 과학은 결국 그 겹겹이 쌓인 장막을 걷어내고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컨트롤 타워를 찾아내고야 만다. 피부암의 가장 치명적인 무기였던 혈관 신생과 면역 회피가 결국 단 하나의 단백질 스위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이 명쾌한 발견은, 머지않아 환자들의 유전자 특성에 맞춘 정교하고 다각적인 맞춤형 표적 치료가 눈부신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매우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국경을 뛰어넘는 헌신이 모여, 암이라는 지독한 질병의 마스터 스위치를 영원히 꺼버릴 그날이 앞당겨지기를 기대해 본다.
[편집실 메모] 쏙쏙 이해되는 최첨단 종양학 사전
HOXD13: DNA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전사 인자 단백질입니다. 정상적인 발달 과정에 쓰이지만, 흑색종에서는 암세포의 성장을 돕고 면역을 피하게 만드는 '핵심 지휘관'으로 돌변합니다.
혈관 신생 (Angiogenesis): 암세포가 자신이 먹고 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종양 주변에 스스로 새로운 핏줄을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세포독성 T세포 (Cytotoxic T cell): 우리 몸의 면역 체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 병기입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정확히 찾아내어 파괴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데노신 (Adenosine): 원래는 우리 몸의 에너지 대사나 수면 조절에 쓰이는 물질이지만, 암세포는 이 물질을 뿜어내어 T세포가 다가오지 못하게 막는 '면역 억제 방패'로 악용합니다.
참조:
Pietro Berico, Amanda Flores Yanke, Fatemeh Vand-Rajabpour, Catherine Do, Irving Simonin Wilmer, Ines Delclaux, Tara Muijlwijk, Robert Stagnitta, Martha Estefania Vázquez-Cruz, Theodore Sakellaropoulos, Matheus Ribeiro. Costa, Annie Cristhine Moraes Sousa-Squiavinato, Michelle Krogsgaard, Ata S. Moshiri, Iman Osman, Jane A. Skok, Patricia A. Possik, Carla Daniela Robles-Espinoza, Amanda W. Lund, Markus Schober, Eva Hernando. A targetable developmental program co-regulates angiogenesis and immune evasion in melanoma. Cancer Discovery, 2026; DOI: 10.1158/2159-8290.CD-24-1853뒤로월간암 202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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