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상식
-> 의학상식
수술 전 ‘면역 항암제’ 9주 투여, 3년 연속 재발률 0% 달성
고동탄(bourree@kakao.com)기자2026년 06월 30일 14:47 분입력   총 92명 방문
AD
특정 유전자 변이 대장암 환자 대상 선행 면역 치료의 놀라운 임상 결과 발표
대장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의 표준 치료 공식은 보통 정해져 있다. 먼저 수술로 암 덩어리를 떼어낸 뒤,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미세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수개월 동안 고통스러운 화학 항암치료를 견뎌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혹독한 과정을 거치고도 환자 4명 중 1명(약 25%)은 3년 이내에 다시 암이 재발하는 아픔을 겪는다. 그런데 만약, 이 지긋지긋한 치료의 ‘순서’를 완전히 뒤바꾼다면 어떨까? 수술을 먼저 하는 대신 수술 전에 ‘면역 항암제’를 짧고 굵게 투여하는 발상의 전환.

최근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UCL 병원 연구팀이 2026년 미국암연구학회(AACR)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NEOPRISM-CRC’ 임상시험 결과는, 이 작은 순서의 변화가 얼마나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증명하며 대장암 치료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잡초를 뽑기 전에 호위무사를 먼저 투입하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독한 화학 항암제 대신 환자 본인의 면역력을 깨우는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이라는 면역 항암제였다. 이들은 2기 또는 3기 대장암 환자 32명에게 기존의 ‘수술 후 화학 항암’ 방식 대신, ‘수술을 하기 전 단 9주 동안만 면역 항암제를 먼저 투여’하는 파격적인 치료를 시행했다. 비유하자면 밭에 난 잡초(암세포)를 무작정 뽑고 독한 제초제(화학 항암제)를 들이붓는 대신, 우리 몸의 강력한 특수부대(면역 세포)를 먼저 밭에 투입해 잡초를 스스로 갉아 먹도록 훈련시킨 것이다. 결과는 의료진조차 두 눈을 의심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암 덩어리가 스스로 녹아내리다… 33개월째 재발률 ‘0%’
수술 전 단 9주 동안 면역 항암제를 맞은 환자들의 수술장에서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무려 59%의 환자에게서 암세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더욱 기적 같은 일은 그다음부터였다. 수술 후 무려 33개월(거의 3년)이라는 긴 추적 관찰 기간 동안, 이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 중 단 한 명도 대장암이 다시 재발하지 않았다. ‘재발률 0%’라는 경이로운 기록이다. 수술 당시 아주 미세한 암세포가 남아있던 환자들조차, 깨어난 면역 세포들의 지속적인 감시 덕분에 남은 암세포가 더 이상 자라거나 퍼지지 않았다.

실제로 2023년 초 혈변으로 3기 대장암 진단을 받고 이 임상에 참여했던 73세의 크리스토퍼 버스턴(Christopher Burston) 씨는 “단 9주간의 면역 치료 후 수술대에 올랐을 때, 주치의가 ‘암이 다 녹아내렸다’고 말해주었다”며, “3년이 지난 지금 나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암이 아니라 그저 나이가 드는 것뿐”이라며 완치의 기쁨을 전했다.

아무나 쓸 수 없다? ‘MSI-H’ 특수 부대를 위한 맞춤 무기
물론 이 기적 같은 마법이 모든 대장암 환자에게 똑같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이 눈부신 성과는 ‘MMR 결핍(또는 MSI-High)’이라는 특정한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환자들에게만 나타난다. 대장암 환자의 약 10~15%가 이 유전자 타입을 가지고 있는데, 이 암세포들은 유전자에 상처가 나면 스스로 고치지 못해 돌연변이를 엄청나게 쏟아내는 특징이 있다. 면역 세포의 입장에서는 적(암세포)의 얼굴에 아주 요란하고 뚜렷한 표식이 그려져 있는 셈이다. 그래서 면역 항암제를 투여해 면역 세포의 안대만 살짝 벗겨주면, 이 요란한 암세포들을 귀신같이 찾아내어 맹렬하게 공격할 수 있게 된다.

내 혈액이 치료의 성공을 미리 알려준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치료가 얼마나 잘 듣고 있는지 족집게처럼 예측하는 ‘맞춤형 혈액 검사’ 기술도 함께 선보였다. 환자의 피를 뽑아 혈액 속에 둥둥 떠다니는 암세포의 찌꺼기 DNA(ctDNA)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기술이다. 연구의 제1저자인 얀롱 장(Yanrong Jiang) 연구원은 “혈액 속에서 종양 DNA가 완전히 사라진 환자일수록 장기적으로 재발 없이 완치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 검사를 활용하면 환자는 불필요하게 독한 약을 더 맞을 필요 없이, 딱 필요한 만큼만 치료를 조율하는 진정한 초개인화 맞춤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수술실의 풍경을 바꿀 위대한 도약
수십 년간 변하지 않았던 대장암 치료의 순서. 하지만 수술 전 면역 세포를 먼저 깨우는 이 지능적인 전략은 암세포의 끈질긴 생명력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재발의 공포를 씻어냈다. 자신의 암세포가 가진 유전자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무기를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면, 말기 병변의 거대한 암 덩어리조차 우리 몸 스스로의 힘으로 부드럽게 녹여낼 수 있다는 이 찬란한 임상 결과는, 투병의 긴 터널을 걷고 있는 대장암 환우들에게 머지않아 고통은 줄고 완치의 기쁨은 극대화될 새로운 의료의 시대가 열릴 것임을 매우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편집실에서] 쏙쏙 이해되는 최신 대장암 치료 사전
MSI-High (현미부수체 불안정성 고도): 세포가 분열할 때 발생하는 DNA 복제 오류를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특성을 가진 대장암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많아 일반 항암제는 잘 안 듣지만, 면역 세포의 눈에 잘 띄어 '면역 항암제'에는 기적처럼 폭발적인 치료 반응을 보입니다.

선행 항암치료 (Neoadjuvant Therapy): 본 수술을 하기 전에 먼저 항암제나 면역 치료제를 투여하는 방식입니다. 암 덩어리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여 수술을 쉽게 만들고, 혈액 속에 숨어있는 미세 전이 세포를 미리 잡아내어 재발률을 낮추는 최신 치료 트렌드입니다.

종양 DNA (ctDNA): 암세포가 깨지거나 죽을 때 혈액 속으로 흘러나오는 미세한 암 유전자 조각입니다. 피 한 방울만으로 몸속에 암이 남아있는지 추적할 수 있어 '액체 생검'의 핵심 기술로 불립니다.
뒤로월간암 2026년 6월호
추천 컨텐츠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