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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면역 항암제가 멈추는 이유, 면역군의 ‘내부 브레이크’ 찾았다
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6년 07월 31일 11:42 분입력   총 72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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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세포 스스로 활동을 멈추게 하는 ‘SLAMF6’ 분자 발견 및 억제 항체 개발
"처음에는 약이 기적처럼 잘 들었는데, 갑자기 암세포가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항암 치료 중에서도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뛰어나 '기적의 3세대 항암제'라 불리는 면역 관문 억제제(면역 항암제). 하지만 많은 환우들이 치료 도중 약효가 떨어지거나 아예 처음부터 약이 듣지 않는 ‘내성’의 벽에 부딪혀 깊은 절망에 빠지곤 한다. 도대체 왜 우리 몸의 든든한 방어군인 면역 세포들은 한참 전투를 잘하다가 갑자기 힘을 잃고 암세포의 공격을 허용하는 것일까?

최근 이 오래된 미스터리를 풀어줄 획기적인 연구 결과가 최고 권위의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되었다.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교 의과대학 및 몬트리올 임상연구소(IRCM)의 앙드레 베예트(André Veillette) 교수 연구팀이 우리 몸의 특수부대인 T세포 내부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자폭 버튼(내부 브레이크)’을 세계 최초로 발견한 것이다.

암세포의 수면제 통과? 진짜 원인은 ‘내부’에 있었다
이 새로운 발견의 가치를 이해하려면 먼저 기존 면역 항암제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우리 몸의 강력한 특수부대인 ‘T세포’는 원래 암세포를 발견하면 가차 없이 공격해 파괴한다. 하지만 영악한 암세포는 T세포의 표면에 있는 PD-1이라는 수용체에 끈적한 수면제 물질(PD-L1)을 묻혀,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하고 잠들게 만든다.

현재 병원에서 널리 쓰이는 키트루다, 옵디보 같은 면역 항암제는 바로 이 ‘수면제 묻히기’ 꼼수를 차단하여 T세포가 계속 싸울 수 있게 해주는 약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수면제 방어막을 쳐주어도 여전히 T세포가 싸우지 못하고 픽픽 쓰러지는 환자들이 많았다. 베예트 교수 연구팀은 암세포가 부리는 꼼수가 아니라, T세포 스스로의 겉면에 붙어있는 ‘SLAMF6’라는 특이한 분자가 그 원인임을 밝혀냈다.

스스로 발목을 묶어버리는 자폭 버튼, ‘SLAMF6’
기존에 알려진 면역 브레이크들은 반드시 ‘암세포’가 다가와서 스위치를 눌러줘야만 작동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SLAMF6’ 분자는 암세포의 꼼수 없이도, T세포 스스로 자신의 표면에서 이 분자를 결합해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아버리는’ 기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이 적군의 공격을 받기도 전에, 자신들끼리 내부 자폭 버튼을 눌러 전투력을 상실해 버리는 것과 같다. SLAMF6 브레이크가 작동하면 T세포 내부에는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암세포를 타격하는 공격력이 뚝 떨어진다.
2. 오랫동안 살아남아 암세포를 기억하는 ‘장기 기억 T세포’의 생성이 줄어든다.
3. T세포가 완전히 기진맥진하여 전투를 포기하는 ‘면역 탈진(Immune exhaustion)’ 상태가 가속화된다.

결국 기존 면역 항암제가 듣지 않았던 이유는, 암세포의 꼼수를 막아주었음에도 불구하고 T세포 스스로 내부 브레이크를 꽉 밟고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부 브레이크를 덮어버릴 ‘맞춤형 방패’의 개발
원인을 찾았으니 해결책을 만들 차례다. 베예트 교수팀은 SLAMF6 분자가 자기들끼리 결합하여 자폭 버튼을 누르지 못하도록, 그 위를 덮어버리는 특수한 ‘단일클론 항체’를 개발했다. T세포의 브레이크 페달에 튼튼한 덮개를 씌워버린 셈이다.

이 새로운 항체를 쥐 실험 모델에 투여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기진맥진했던 인간의 T세포들이 브레이크가 풀리자마자 맹렬하게 활성화되었고, 쉽게 지치지 않는 튼튼한 면역 세포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 결과 실험용 쥐의 몸속에서 암 덩어리가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강력한 항암 반응이 확인되었다. 연구진은 “새로 개발된 항체가 지금까지 알려진 그 어떤 억제제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성능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내성에 갇힌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
이 연구가 특히 반가운 이유는 기존 면역 항암 치료(PD-1/PD-L1 억제제)를 받다가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약이 듣지 않거나, 아예 처음부터 치료 효과를 보지 못했던 수많은 암 환우들에게 확실한 ‘대안(Plan B)’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IRCM의 장-프랑수아 코테(Jean-François Côté) 원장은 “이 혁신적인 발견은 굳게 닫혀있던 면역 항암제의 한계를 뛰어넘어, 정밀 의료의 새로운 장을 여는 쾌거”라며 찬사를 보냈다. 연구팀은 머지않아 이 새로운 항체를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기존 면역 항암제와 섞어서 투여하는(병용 요법) 방식으로, 고형암과 혈액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초기 임상시험에 돌입할 계획이다.

인체의 신비, 그 끝에서 발견하는 완치의 길
끝을 알 수 없는 항암의 길에서 ‘약이 듣지 않는다’는 주치의의 말은 환우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우리 몸속 깊은 곳의 아주 작은 내부 브레이크 하나까지 샅샅이 찾아내어, 다시 그 스위치를 켤 수 있는 새로운 열쇠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 당장 내 몸의 면역 세포가 지쳐 쓰러져 있을지라도, 스스로 묶인 발목을 풀고 다시 맹렬하게 암세포와 싸우게 만들어줄 혁신적인 차세대 면역 항암제가 출격의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는 사실이 기약 없는 투병에 지친 환우들에게 매우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편집실에서] 쏙쏙 이해되는 면역 항암 사전
면역 관문 (Immune Checkpoint): 우리 몸의 면역 세포(T세포)가 정상 세포까지 과도하게 공격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일종의 '브레이크' 시스템입니다. 암세포는 이 브레이크를 몰래 밟아 면역 세포를 재워버립니다.

T세포 탈진 (Immune Exhaustion): 면역 세포가 암세포와 너무 오랫동안 치열하게 싸우거나 강한 억제 신호를 받아서, 말 그대로 체력이 방전되어 더 이상 공격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기진맥진한 상태를 뜻합니다.

SLAMF6: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면역 세포의 내부 분자입니다. 암세포가 없어도 T세포 스스로 활동을 멈추게 만드는 '자폭 버튼' 역할을 하여, 향후 내성을 극복할 차세대 면역 항암제의 가장 중요한 표적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참조:
Bin Li, Ming-Chao Zhong, Cristian Camilo Galindo, Jiayu Dou, Jin Qian, Zhenghai Tang, Dominique Davidson, André Veillette. SLAMF6 as a drug-targetable suppressor of T cell immunity against cancer. Nature, 2026; 652 (8110): 722 DOI: 10.1038/s41586-026-101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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