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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한 '분자 가위', 암세포의 급소
고동탄(bourree@kakao.com)기자2026년 07월 31일 11:44 분입력   총 47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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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1 유전자 과다 발현을 겨냥한 새로운 맞춤형 치료 가능성 제시
우리 몸에는 암세포가 생기지 않도록 방어하는 훌륭한 ‘보안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다. 종양 억제 유전자들이 만들어내는 단백질들이 매일매일 망가진 DNA를 수리하고 고치면서 암의 발생을 막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은 이 유전자들이 고장 나거나 숫자가 부족해질 때 암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고 알려져 왔다.

그런데 최근, 이 착한 DNA 수리공이 오히려 ‘너무 많아서’ 병을 키운다는 흥미로운 반전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의과대학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이 연구는, 선천적인 유전자 돌연변이가 없더라도 암세포의 치명적인 약점을 찾아내어 공격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멈추지 않는 분자 가위, ‘EXO1’의 과유불급
우리 몸의 DNA 수리공 중에는 ‘EXO1’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백질이 있다. 이 단백질은 평소 세포 안에서 아주 정교한 ‘분자 가위’ 역할을 한다. DNA에 상처가 나면 싹둑싹둑 예쁘게 다듬어서 새살이 돋듯 다시 이어 붙일 수 있게 도와주는 아주 고마운 존재다.

문제는 이 가위(EXO1)가 세포 안에 비정상적으로 너무 많아졌을 때 발생한다. 연구팀의 조지-루시안 몰도반(George-Lucian Moldovan) 교수는 수리공이 너무 많아지면 멀쩡하게 잘 있는 건강한 DNA 구조까지 마구잡이로 잘라내고 훼손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지나친 가위질 때문에 오히려 유전자가 불안정해지고, 이것이 결국 암세포가 자라나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유방암과 난소암을 비롯해 흑색종(피부암), 고환암, 자궁경부암, 간담도암(간, 담낭, 담도) 환자의 약 20~30%에서 이 EXO1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넘쳐나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가짜 ‘안젤리나 졸리 유전자’의 등장
의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전자 중 하나는 단연 ‘BRCA’다.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다는 이유로 예방적 수술을 받아 큰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BRCA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유방암이나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그런데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연구팀의 실험 결과, 세포 내에 EXO1 가위가 너무 많아져서 이리저리 유전자를 잘라대면, 진짜 BRCA 돌연변이를 가진 암세포와 똑같은 약점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유전자 결함이 없더라도, EXO1이 너무 많은 암세포는 스스로 방어막을 헐어버려 외부 공격에 아주 취약해지는 셈이다.

위기를 기회로: 표적 치료제의 훌륭한 타깃
적의 약점을 알았으니 이제 공격할 차례다. 연구팀은 BRCA 돌연변이 암에 특효약으로 쓰이는 표적 항암제인 ‘올라파립(Olaparib)’을 이 EXO1 과다 발현 암세포에 투여해 보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암세포들은 마치 진짜 BRCA 돌연변이가 있는 것처럼 약물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며 무너져 내렸다. 선천적인 유전자 돌연변이가 없는 환자들도, 세포 내에 EXO1만 과도하게 많다면 부작용이 적은 이 훌륭한 표적 항암제의 혜택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오랜 기간 항암제로 널리 쓰여 온 ‘시스플라틴(Cisplatin)’ 역시 이 암세포들에게 아주 잘 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보다 훨씬 적은 용량의 항암제만으로도 충분히 종양의 크기를 줄일 수 있어, 어르신 환우들이 겪는 항암 부작용의 고통을 크게 덜어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암이 시작된 곳이 아니라, ‘유전자 지도’를 보는 시대
과거에는 “유방암에는 유방암 약, 간암에는 간암 약”을 쓰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몰도반 교수는 “이제는 암이 어느 장기에서 출발했느냐가 아니라, 그 암세포 안에 어떤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지를 바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치료 효과는 극대화하는 ‘미래의 맞춤형 항암 치료’라는 것이다.

비록 내 몸의 수리공이었던 분자 가위가 멈추지 않고 폭주해 암을 키웠을지라도, 현대 의학은 그 폭주마저 역이용하여 암세포의 숨통을 끊어낼 뾰족한 무기를 찾아내고 있다. 선천적인 돌연변이가 없어 표적 치료제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많은 고령의 환우들에게도, 머지않아 내 암세포의 특성에 딱 맞는 아주 정밀하고 안전한 맞춤형 치료의 길이 활짝 열릴 것임을 매우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편집실에서] 최신 의학 사전
표적 항암제: 암세포가 자라나는 데 필요한 특정 단백질이나 유전자만을 '표적'으로 삼아 정밀하게 공격하는 약입니다. 정상 세포를 함께 공격하던 과거의 독한 항암제보다 머리 빠짐, 구토 등의 부작용이 훨씬 적습니다.

BRCA (브라카) 유전자: 원래는 암세포가 생기지 않도록 막아주는 훌륭한 유전자이지만, 부모로부터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결함)'를 물려받게 되면 유방암이나 난소암 발병 확률이 크게 높아집니다.

올라파립 (Olaparib): BRCA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암세포의 남은 수리 기능을 완전히 고장 내어 암세포를 스스로 죽게 만드는 대표적인 표적 치료제(PARP 억제제)입니다.

참조:
Alexandra Nusawardhana, Claudia M. Nicolae, George-Lucian Moldovan. The nuclease EXO1 promotes genomic instability by degrading nascent DNA in BRCA-proficient cells. Nature Communications, 2026; 17 (1) DOI: 10.1038/s41467-026-699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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