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특집기사흔한 동네 고혈압약, 항암제 위력 200% 끌어올린다고동탄(bourree@kakao.com)기자2026년 08월 31일 12:20 분입력 총 62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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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약 '텔미사르탄'과 표적항암제 병용 시 항암 효과 극대화 규명
암 진단을 받은 환우와 가족들을 가장 짓누르는 것은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집 한 채 값이 훌쩍 넘어가는 천문학적인 '신약 치료비'다. 게다가 수많은 임상시험을 거쳐 훌륭한 신약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족히 10년 이상의 억겁 같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최근 전 세계 종양학계는 완전히 새로운 약을 백지에서부터 만드는 대신, 이미 우리가 다른 병을 고치기 위해 흔하게 먹고 있는 안전하고 싼 약들 중에서 암세포를 죽이는 뜻밖의 능력을 가진 약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를 '신약 재창출(Drug Repurposing)'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최근 이 신약 재창출 분야에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엄청난 발견이 나왔다. 수십 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혈압을 낮추는 데 쓰여 온 아주 흔하고 저렴한 고혈압약이, 최첨단 표적 항암제의 위력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키는 마법의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미국 다트머스 암센터(DCC)의 타일러 J. 쿠리엘(Tyler J. Curiel) 박사 연구팀이 국제 면역항암학회지(JITC)에 발표한 이 가슴 뛰는 연구 성과를 상세히 들여다본다.
반쪽짜리 기적의 약, '파프(PARP) 억제제'의 한계
고혈압약의 활약을 이해하려면 먼저 '올라파립'으로 대표되는 표적 항암제, 즉 '파프(PARP) 억제제'가 암세포를 죽이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암세포도 생명체인지라 끊임없이 세포가 찢어지고 망가진다. 이때 암세포는 핏속을 떠돌아다니는 '비상 수리공(PARP 효소)'들을 불러모아 망가진 DNA를 말끔히 고쳐내며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파프 억제제는 바로 이 비상 수리공들의 손발을 묶어버리는 약이다. 수리공이 사라진 암세포는 찢어진 DNA를 고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붕괴하며 사멸하게 된다.
하지만 이 기적의 항암제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환자가 특정 유전자(BRCA 등)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어서 애초에 암세포의 자체 수리 능력이 엉망인 사람들에게만 약이 기가 막히게 잘 듣는다는 점이다. 반대로 수리 능력이 멀쩡한 대다수의 일반 암 환자들에게는 이 비싼 약을 써도 암세포가 다른 방법으로 수리를 해버려 약효가 거의 듣지 않는다. 게다가 약이 잘 듣던 환자라도 시간이 지나면 암세포가 영악하게 내성을 만들어내어 약을 무력화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고혈압약이 암세포의 숨통을 조이는 세 가지 방법
그런데 다트머스 암센터 연구팀은 고혈압약 중 하나인 '텔미사르탄(Telmisartan)'을 이 표적 항암제와 함께 쥐에게 먹여보았고, 그 결과 놀라운 마법이 벌어졌다.
첫째, 텔미사르탄은 암세포 내부의 DNA를 무자비하게 찢어발기는 역할을 했다. 암세포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항암제 때문에 비상 수리공이 파업한 상태인데, 고혈압약이 들어와 집안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니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이 붕괴해 버린 것이다. 이 덕분에 유전자 돌연변이가 없어서 표적 항암제가 전혀 듣지 않던 환자들의 암세포조차도 풍비박산이 났다.
둘째, 텔미사르탄은 우리 몸의 면역 군대를 깨우는 강력한 '사이렌'을 울렸다. 암세포 내부에 제1형 인터페론이라는 신호 물질을 팍팍 뿜어내게 만든 것이다. 이 사이렌 소리를 듣고 깊은 잠에 빠져있던 T세포 등 내 몸의 면역 특수부대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암세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셋째, 암세포가 둘러쓰고 있던 '투명 망토'를 강제로 벗겨버렸다. 영악한 암세포들은 면역 세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겉면에 'PD-L1'이라는 단백질을 둘러쓰고 정상 세포인 척 위장술을 펼친다. 그런데 텔미사르탄이 이 PD-L1 수치를 뚝 떨어뜨려 암세포를 발가벗겨 버린 것이다. 투명 망토가 벗겨진 암세포는 면역 군대의 집중포화를 맞고 산산조각이 났다.
수많은 고혈압약 중 오직 '텔미사르탄'만의 특별한 능력
고혈압약은 약국에 수십 가지가 넘게 있지만, 놀랍게도 이러한 항암 증폭 효과는 오직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ARB) 계열 중에서도 '텔미사르탄'만이 가진 고유하고 독특한 능력이었다. 연구팀이 다른 종류의 고혈압약들을 똑같이 테스트해 보았지만, 이토록 강력하게 면역 세포를 부르고 암세포의 투명 망토를 벗겨내는 능력은 텔미사르탄에서만 뚜렷하게 관찰되었다.
쿠리엘 박사는 "텔미사르탄은 단순히 파프 억제제뿐만 아니라, 다른 일반 항암 화학 요법이나 최신 면역 항암제와 함께 썼을 때도 약효를 엄청나게 높여준다는 아주 좋은 데이터들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미 안전한 약, 환자의 병상으로 직행하다
이 연구가 암 환우들에게 가슴 벅찬 희망을 주는 가장 큰 이유는 '속도'에 있다. 텔미사르탄은 이미 수십 년 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깐깐한 문턱을 넘어 전 세계 수억 명의 고혈압 환자들이 매일 아침 안심하고 먹고 있는 '안전성이 100% 입증된 약'이다.
굳이 쥐와 원숭이를 거치는 복잡한 독성 검사를 다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연구진은 발견 즉시 이 약을 실제 암 환자들에게 투여하는 임상시험에 돌입할 수 있었다. 실제로 다트머스 암센터는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되어 치료가 몹시 까다로운 거세 저항성 전성립암 환자와, 독한 항암제에 완전히 내성이 생겨버린 난소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두 건의 임상시험을 발 빠르게 시작했다. 쿠리엘 박사에 따르면, 임상시험에 참여한 첫 번째 전립선암 환자에게서 이미 '매우 예외적이고 훌륭한 치료 반응'이 나타났다고 한다.
평범함 속에 숨겨진 위대한 기적
한 알에 불과 몇백 원 남짓한 흔하디흔한 고혈압약이, 수백만 원짜리 최첨단 표적 항암제의 닫힌 문을 열어젖히는 '마스터키'가 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비싸고 독한 항암제에 지쳐 더 이상 쓸 약이 없어 절망하던 수많은 암 환우들에게, 이 작고 하얀 고혈압약 알약은 '신약 재창출'이 만들어낼 눈부신 기적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평범함 속에 숨겨진 이 위대한 발견이 머지않아 암세포의 숨통을 완벽하게 끊어낼 강력한 무기가 되어 우리 식탁 위에 오를 날을 매우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편집실에서] 쏙쏙 이해되는 최신 종양학 사전
파프(PARP) 억제제: 암세포가 찢어진 자신의 DNA를 스스로 꿰매고 고치는 과정을 훼방 놓는 표적 항암제다. 암세포의 자가 수리 능력을 마비시켜 결국 암세포가 굶어 죽거나 터져 죽게 만든다. '올라파립'이 대표적이다.
텔미사르탄 (Telmisartan): 혈관을 좁아지게 만드는 물질을 차단하여 혈압을 부드럽게 낮춰주는 아주 대중적인 고혈압약(ARB 계열)이다. 먹기 편한 알약 형태이며, 고혈압이 없는 사람이 저용량으로 먹어도 큰 부작용이 없을 만큼 안전한 약으로 꼽힌다.
신약 재창출 (Drug Repurposing): 이미 안전하다고 허가받아 시판 중인 다른 병의 치료제(예: 무좀약, 구충제, 고혈압약 등)가 암세포를 죽이는 데도 효과가 있는지 찾아내어 항암제로 재활용하는 똑똑한 신약 개발 기법이다. 개발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환자들의 생명을 빠르게 살릴 수 있다.
참조:
Clare E Murray, Carlos O Ontiveros, Jordan Wentworth, Paige Blinkiewicz, Bernice Leung, Haiyan Bai, Nathaniel Spicer, Anja Holtz, Chris Tanner, Akshaya Balasubramanian, Wenjing Li, Eloise Dray, Weixing Zhao, Tyler J Curiel. Telmisartan increases olaparib efficacy in homologous recombination proficient tumors by augmenting type I interferon production. Journal for ImmunoTherapy of Cancer, 2026; 14 (3): e012426 DOI: 10.1136/jitc-2025-012426뒤로월간암 202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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