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의학상식장 속 유산균을 암 치료제 공장으로, 췌장암과 싸우는 새로운 무기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6년 09월 30일 11:00 분입력 총 164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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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항암치료는 지난 십수 년간 여러 암의 치료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러나 유독 췌장암 앞에서는 이 혁신적인 치료법도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췌장 종양 주변에 형성되는 특수한 환경이다. 췌장암은 흔히 면역세포가 제대로 공격을 개시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이른바 '차가운' 종양 환경을 만들어낸다. 면역세포가 종양 근처까지 다가가더라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무력화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미국 시카고대학교 연구팀이 이 오래된 난제를 풀어낼 실마리를 찾았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사람의 장 속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유산균의 일종인 비피더스균(Bifidobacterium longum)을 유전적으로 개조해 만든 'BifidoSumIL-2'라는 균주를 이용해, 면역을 자극하는 치료 물질을 종양 안으로 직접 실어 날랐다.
동물 실험에서 이 치료법은 암과 싸우는 T세포를 선택적으로 활성화시켜 췌장 종양의 성장 속도를 늦추는 효과를 보였다. 특히 항암화학요법이나 방사선치료, 면역항암치료와 함께 사용했을 때 효과가 한층 더 강해졌다. 연구팀은 이 결과가 향후 췌장암 환자들의 치료 반응을 끌어올릴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세균에게 약을 배달시키다
"췌장암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커다란 의학적 난제였습니다. 그래서 저희에게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시카고대학교 방사선·세포종양학과 과장이자 이번 연구를 이끈 랄프 와이첼바움 교수의 말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BifidoSumIL-2는 종양에 도달한 뒤에야 비로소 변형된 형태의 인터루킨-2(IL-2)를 방출하도록 설계됐다. IL-2는 암을 공격하는 T세포를 활성화시키는 강력한 면역 신호 물질이다. 그러나 IL-2를 기존 방식대로 몸 전체에 투여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오히려 항암 면역 반응을 약화시키는 조절 T세포까지 함께 자극해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피하기 위해 IL-2를 변형한 '숨IL-2(SumIL-2)'라는 물질을 사용했다. 이 물질은 암을 공격하는 T세포는 더 정밀하게 활성화시키면서, 면역 반응을 억누르는 조절 T세포는 덜 자극하도록 설계됐다. 연구팀은 이 숨IL-2를 비피더스균 안에 집어넣어, 치료 물질이 온몸이 아니라 종양 안에만 집중적으로 쌓이도록 만들었다.
이 치료법을 개발하기까지는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협업이 필요했다. 미생물학, 합성생물학, 종양학, 면역학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했다. 시카고대학교 미생물학과 조교수 마크 미미 박사는 "세균을 이해하는 사람, 종양을 이해하는 사람, 면역계를 이해하는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야만 가능한 매우 복합적인 도전이었다"고 설명했다.
왜 하필 비피더스균인가
비피더스균이 치료 물질을 실어 나르는 운반체로 선택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 균은 산소가 거의 없는 환경, 즉 '무산소 환경'에서만 자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췌장암을 포함한 여러 고형암 종양 내부는 대체로 산소가 부족한 상태인 반면, 정상적인 건강한 조직은 산소가 충분해 이 균이 자리 잡기 어렵다.
미미 박사는 "비피더스균은 반드시 무산소 환경에서만 살 수 있는 절대 혐기성균이기 때문에 산소가 있는 곳에서는 자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 균을 몸 전체에 투여하면 산소가 풍부한 정상 조직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라지지만, 산소가 부족한 종양 내부에서는 살아남아 활동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특성 덕분에 유전자를 조작한 비피더스균은 종양 안에서만 작동하는 초소형 '치료제 공장'처럼 기능할 수 있다. 이 균은 몸 전체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 곳, 즉 종양 내부에서만 숨IL-2를 만들어낸다. 연구팀은 비피더스균이 전임상 동물실험에서 안전성 면에서도 양호한 결과를 보였고, 이미 프로바이오틱스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비피더스균은 요구르트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균으로, 안전성이 널리 인정된 미생물이다.
다만 이 균을 유전적으로 조작하는 과정 자체는 쉽지 않았다. 미미 박사는 "비피더스균은 다루기 까다로운 미생물이다. 무산소 환경에서만 자라고 증식 속도도 느린 데다, 대장균 같은 표준 실험균에 비해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도구도 훨씬 제한적이다. 연구의 상당 부분은 이 균을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지 알아내는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다른 치료법과 함께일 때 더 강력해진다
동물실험 결과, BifidoSumIL-2는 종양 내부에 선택적으로 모여들면서 면역 반응을 자극했고, 췌장암의 성장을 늦추는 효과를 보였다. 특히 암을 직접 공격하는 CD8+ T세포의 활동을 늘려, 종양 주변 환경을 보다 우호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효과도 확인됐다.
이 효과는 기존 항암치료와 병용했을 때 한층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세균 치료법을 항암화학요법이나 방사선치료, 또는 PD-L1을 표적으로 하는 면역항암제와 함께 사용하자, 각 치료법을 단독으로 사용했을 때보다 종양이 더 잘 조절되고 생존 기간도 더 길어졌다.
와이첼바움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병용 가능성이다. BifidoSumIL-2는 단독으로도 효과가 있지만, 방사선치료와 항암화학요법, 면역항암치료와 함께 사용해도 효과를 발휘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넘어야 할 산들
고무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BifidoSumIL-2는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장기적인 안전성, 종양이 아닌 다른 부위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면역 반응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그리고 주사가 아니라 먹는 방식으로 투여할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연구팀은 이 전략을 KRAS 억제제 등 최근 개발되고 있는 새로운 췌장암 치료제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지도 살펴볼 계획이다.
세균을 약으로 쓰는 시대
이번 연구는 '세균을 약으로(bugs as drugs)' 활용하는 접근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프로바이오틱스 세균을 유전적으로 조작해 종양을 스스로 찾아가 그 안에서 치료 물질을 만들어내도록 함으로써, 강력한 면역 치료제를 정작 필요한 곳에만 집중시키고 몸의 다른 부위에서 생기는 부작용은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연구는 러드윅 재단과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으며, 시카고대학교를 비롯해 텍사스대학교 사우스웨스턴 캠퍼스, 중국 칭화대학교 연구진이 함께 참여했다. 한편 시카고대학교 의료원은 오는 2027년 4월, 시카고 최초의 독립형 암센터인 '애브비 재단 암 파빌리온'을 개관해 첨단 진단과 혁신적인 치료, 중개연구 성과, 환자와 지역사회를 위한 통합 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참조:
Jaehyun Lee, Kaiting Yang, Christina A. Nowicki, Wei Liu, Kangdi Li, Emile Naccasha, Zhichen Sun, Yang-Xin Fu, Hua Liang, Ralph R. Weichselbaum, Mark Mimee. Engineered probiotic Bifidobacterium for tumor-targeted pancreatic cancer therapy. Science Advances, 2026; 12 (30) DOI: 10.1126/sciadv.adz1388뒤로월간암 202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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