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건강일반기억을 지키는 따뜻한 기적, 우리 곁의 약에서 찾다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6년 10월 30일 19:12 분입력 총 482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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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포진 백신과 비아그라, 알츠하이머(치매) 예방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라
나이가 들면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가장 크게 자리 잡는 두려움 중 하나는 아마도 ‘치매’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추억이 조금씩 흐려진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치매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완벽한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영국에서 아주 반갑고 따뜻한 소식이 들려왔다. 과학자들이 전혀 새로운 약을 밑바닥부터 만드는 대신, 우리가 이미 친숙하게 알고 있는 기존의 약들 속에서 알츠하이머(치매)를 막아줄 든든한 방패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영국 엑서터 대학교(University of Exeter) 연구팀이 주도한 이 연구는, 우리 곁에 있던 익숙한 약들이 어떻게 뇌 건강을 지키는 새로운 구원투수가 될 수 있는지를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1. 발상의 전환: ‘신약 재창출(Drug Repurposing)’의 마법
새로운 약을 하나 세상에 내놓으려면 보통 10년에서 15년이라는 아주 긴 시간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게다가 그렇게 공을 들여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당장 치료가 간절한 환우와 가족들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길고 아득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발상을 전환했다. “이미 세상에 나와 안전하게 쓰이고 있는 수많은 약 중에서, 뇌를 보호하는 데 효과가 있는 약을 다시 찾아보면 어떨까?” 이것을 의학 용어로 ‘신약 재창출(Drug Repurposing)’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다 마신 예쁜 유리병을 버리지 않고 깨끗이 씻어 아름다운 꽃병으로 다시 쓰는 것과 같다. 이미 사람의 몸에 들어가도 안전하다는 것이 수십 년간 검증된 약들이기 때문에, 치매 치료제로 쓸 수 있다는 것만 확인되면 아주 빠르고 저렴하게 환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과거 우리가 두통약으로만 알았던 ‘아스피린’이 심장마비와 뇌졸중을 예방하는 훌륭한 약으로 새롭게 쓰이게 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연구팀은 치매 분야에서도 이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대대적인 탐색에 나섰다.
2.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 ‘최우수 후보’ 3인방
영국 알츠하이머 협회(Alzheimer's Society)의 지원을 받은 21명의 세계적인 치매 전문가들은 기존에 존재하던 80여 개의 약물을 꼼꼼하게 살폈다. 세포 실험과 동물 실험 결과는 물론,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드셔도 안전한지 등을 여러모로 평가했다. 여러 차례 엄격한 심사 끝에, 알츠하이머병 예방과 치료에 가장 큰 가능성을 보여준 ‘최우선 후보 약물 3가지’가 최종 선정되었다. 그 이름들은 놀랍게도 우리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3. 첫 번째 희망: ‘대상포진 백신(Zostavax)’의 놀라운 반전
전문가들이 만장일치로 꼽은 가장 강력하고 유망한 후보 1위는 뜻밖에도 ‘대상포진 백신’이었다. 피부에 극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대상포진을 막는 주사가 어떻게 뇌의 기억을 지킨다는 것일까?
최근 의학계에서는 몸속에 숨어있던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뇌의 면역 체계를 자극해 알츠하이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런데 대상포진 백신을 맞으면,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훈련을 하게 된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백신이 면역 체계를 건강하게 조절하여, 뇌세포를 파괴하는 해로운 염증 반응까지 함께 막아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대상포진 백신은 단 1~2회 접종만으로 끝나며, 오랫동안 사용되어 안전성이 입증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실제로 과거 연구 통계에 따르면,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이 약 16%나 낮았다고 한다. 연구진은 이 희망적인 수치를 바탕으로 영국에서 대규모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4. 두 번째 희망: 혈류를 맑게 뚫어주는 ‘비아그라(Sildenafil)’
두 번째로 선정된 유력한 후보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널리 알려진 ‘비아그라(성분명: 실데나필)’다. 비아그라의 원래 핵심 기능은 좁아진 혈관을 넓혀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몸에서 가장 많은 피와 산소를 필요로 하는 기관이다. 뇌에 피가 잘 돌지 않으면 찌꺼기가 쌓이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꼽히는 ‘타우(Tau)’ 단백질이다.
연구진의 쥐 실험 결과, 비아그라 성분이 뇌로 가는 혈류량을 팍팍 늘려주자, 뇌세포가 보호를 받고, 나쁜 타우 단백질이 쌓이는 것이 줄어드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피가 맑게 돌면서 뇌 속의 노폐물이 청소되고, 결과적으로 쥐들의 생각하는 능력과 기억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이다.
5. 세 번째 희망: 신경세포의 보호자 ‘릴루졸(Riluzole)’
마지막 후보는 루게릭병(운동신경원병) 치료제로 쓰이고 있는 ‘릴루졸’이다. 루게릭병은 운동 신경세포가 서서히 파괴되는 무서운 병인데, 릴루졸은 이 신경세포가 손상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뇌의 기억 신경세포가 파괴되는 알츠하이머병에도 이 약이 비슷한 보호막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동물 실험에서 릴루졸은 뇌의 인지 기능을 높이고 치매 유발 단백질 수치를 낮추는 등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었다.
6. 다가오는 희망의 봄을 기다리며
이 세 가지 약물 외에도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 우울증 치료제, 백혈병 치료제 등 다양한 약물들이 치매 예방의 2차 후보군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는 우리가 암이나 다른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했던 수많은 약들이, 언젠가는 치매를 정복하는 위대한 무기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를 이끈 엑서터 대학교의 앤 코벳(Anne Corbett) 교수는 “치매를 이겨내려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십분 활용하는 것부터 완전히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것까지, 모든 길을 다 열어두어야 한다”며 신약 재창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지금 당장 병원에 가서 치매를 예방하겠다며 비아그라나 대상포진 백신을 처방해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 약들이 실제 사람의 치매 치료에 얼마나,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정확한 용량과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대규모 임상시험이 이제 막 본격적으로 시작될 참이기 때문이다.
영국 알츠하이머 협회의 피오나 캐러거(Fiona Carragher) 책임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치매는 개인과 가족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지만, 우리는 결국 연구를 통해 이 병을 이겨낼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두통약이 심장병을 예방하게 된 것처럼, 기존의 약들이 치매 치료제로 거듭나는 이 놀라운 여정은 현재 치매 연구에서 가장 가슴 뛰는 분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를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시간. 그 소중한 기억을 지키기 위한 과학자들의 따뜻한 노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 곁에 이미 존재하던 약들이 치매라는 긴 터널 끝에서 밝은 빛이 되어주기를, 그 희망의 봄날이 하루빨리 환우들의 곁에 도착하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편집실에서] 한눈에 쏙 들어오는 의학 용어
신약 재창출(Drug Repurposing)이란?
제약회사에서 이미 개발을 완료하여 시판 중이거나, 안전성은 확인되었지만 효과가 부족해 개발이 중단되었던 약물을 대상으로 '새로운 질병의 치료 효과'를 찾아내는 방법입니다. 마치 옷장에 안 입고 걸어두었던 튼튼한 겨울 외투를 꺼내어, 멋진 가방으로 리폼해서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과 같습니다. 안전성이 확보되어 있어 임상시험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참조:
Anne Corbett, Janet Sultana, Kate Stych, Roger Mills, Jeff L. Cummings, Gareth Williams, Zahinoor Ismail, Maria Soto-Martin, Jacobo Mintzer, Serge Gauthier, Nigel H. Greig, Wendy Noble, Richard Killick, Mitchell K. P. Lai, Carol Routledge, Frank Walsh, Howard Fillit, Dag Aarsland, Roger Lane, Kathryn Mills, Clive Ballard. Drug repurposing for Alzheimer’s disease: a Delphi consensus and stakeholder consultation. Alzheimer\'s Research, 2025; 17 (1) DOI: 10.1186/s13195-025-01895-4뒤로월간암 202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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