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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들이 병에 걸리는 이유는
고정혁기자2011년 08월 25일 16:54 분입력   총 876094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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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들이 병에 걸리는 이유, 죄인들이 오래 사는 이유

수많은 종교지도자와 성자들이 병에 걸려 죽었다는 사실은, 평범한 우리들이 살아가는 동안 어떤 질병에 걸렸을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여러 시사점을 준다. 영적 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가정을 한다.

01. 성자들은 좋은 건강 상태를 보장 받는다.
02. 누군가 건강이 좋지 못하거나 병에 걸렸다면 그것은 영적 결함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가정은 영적으로 특별한 사람뿐 아니라,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에게도 옳지 않다. 예수와 관련된 일화를 보자. 예수는 어느 날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과 마주쳤다. 이때 제자가 그에게 물었다.
"누구의 죄입니까? 이 사람과 부모 가운데 누구 때문에 그가 장님으로 태어난 것입니까?"

이 질문은 근래 뉴에이지 분야의 곳곳에서 한결같이 등장하는 질문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왜 내가 이 질병을 선택했는가? 내가 지금 또는 이전에 지녔던 결점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예수는 다음과 같은 명확한 대답을 주고 있는데, 이는 의식과 치유를 다루는 모든 뉴에이지 책의 표지 글귀로 삼을 만한 것이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한복음>9:3

이 메세지보다 더 명확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이는 영적 결함이 털끝만큼도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뿌리 깊은 육체적 문제는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고, 누구도 원죄 때문에 처벌받지 아니하며, 누구도 자신의 질병을 선택하지 않았다.
예수는 우리로서는 쉽게 그 의도를 이해하기 힘든, 보다 높은 차원에서의 질병의 쓰임새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절대자가 행하는 방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특정 질병이 우주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그 질병이 내포하는 의미는 우리 같은 유한한 존재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게 은닉되어 있으며, 단지 신성만이 그 의미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통해 영적인 성취와 육체적인 건강을 동일시해서는 안 되며, 질병에 대해 어떤 천박하고 미신적인 의미도 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질병에 걸린 성자들의 사례는 동전의 한 면일 뿐이다. 그 반대쪽에는 아주 건강한 '나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앙에 대해 관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는 타락한 사람인데, 평생 한 번도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여러분 가운데 대부분이 이런 사람들을 알거나 혹은 그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건강에 관한 모든 상식을 뒤집는다. 그들은 부도덕하고 담배를 즐기며, 마음껏 술을 마시지만, 아파본 적도 없이 백 살까지 거뜬히 생존한다.

질병에 걸린 성자와 건강한 타락자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어떤 사람의 영적 수준과 육체적 건강 사이에, 확정됐거나 일차원적인 또는 일대일로 대응되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누군가 엄청난 영적 경지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여전히 극심한 질병에 시달릴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 건강과 영적 성취 사이에 고정된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내재하는 신성'이라는 개념 또한 믿고 있는데, 이는 절대자가 가지는 요소나 본질이 모든 인간의 내면에도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신성이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인간 존재가 신성한 절대자에 비해서는 불완전하다는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매일 수백만 가지 방식으로 결함을 드러낸다. 신성이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마음도 우리 육체에 자리 잡지만, 신성과 우리 마음이 완벽하게 동일하지 않듯이, 육체도 마음을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우리 마음이 절대자를 완벽한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실패했다 하더라도 이것을 "신이 죄를 지었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또한 그것을 절대자의 단점으로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육체가 아픈 정도로 우리가 가진 죄가 평가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육체는 유전적으로 병에 쉽게 걸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전염에 약할 수도 있다. 이런 육체적 특성은 종종 제어하기 힘들고, 어느 면에서는 완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육체가 언제나 의지와 정신 상태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육체는 우리의 의견을 전혀 붇지 않고도 노화하거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육체를 다루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의식과 건강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풍조가 지니는 주된 문제점이다. 이런 풍조야말로 건강을 잃었을 때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잠재적인 이유이다.

식물과 동물, 새와 물고기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질병에 걸린다. 그들은 암, 관절염, 박테리아 또는 바이러스 감염 등과 같이 우리가 걸리는 질병과 매우 비슷한 종류의 증상들을 보이고 있다. 이들도 경솔하게 행동하다가 사고를 당해서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기도 하며,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령과 치매 등의 문제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동물이나 식물이 질병에 걸렸을 때 그들에게 전혀 다른 종류의 태도를 취한다.

우리는 그들을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는 나무가 암에 걸렸거나 해충에 감염됐다고 해서 그 나무가 참된 나무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개가 골반형성장애를 가지고 있을 때 그 개가 잘못했다고 여기지 않으며, 고양이가 백혈병에 걸렸다고 해서 그 고양이가 본질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동식물에 관해서는 질병을 자연적인 순리의 한 부분으로 여길 뿐이며, 윤리적이거나 도덕적 또는 영적 결함의 징후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창조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런 창조물들이 질병에 걸렸을 때 친절, 용서, 상냥함과 같은 덕목을 그들에게 베푸는 것처럼 우리 자신에게도 이런 훌륭한 덕목을 베풀 수 있다.
위의 글이 육체적 상태와 영적 상태 사이의 일반적인 상관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이라는 단어를 '고정된'이라는 단어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는 심각한 질병이 왜 발생하는지에 관해 전혀 모를 수 있다는 뜻이다.

<치료하는 기도>, 의학박사 래리 도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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