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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책, 기적의 사과
고정혁기자2013년 06월 30일 18:22 분입력   총 566602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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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으리라 믿는데 일본의 이시카와 다쿠지가 쓴 <기적의 사과>라는 책이 있다. 저자 이시카와 다쿠지는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기무라 아키노리라는 농부를 인터뷰하고 그것을 토대로 위의 책을 썼다. 농부 기무라는 소위 무농약 무비료로 가지가 휘어지게 열매를 맺는 기적의 사과 농가를 운영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누구나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과나무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기무라 씨의 기막힌 감동스토리 때문만도 아니다. 이 책은 그 어느 학자가 쓴 생태학 교재보다 더 생생하고 명료하게 생태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것이 왜 중요한지, 흔히 말하는 종다양성이 무엇이며 그것은 또 왜 그리 중요한 것인지, 인간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지 등에 대해 시원한 대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데 몇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거기서 얻어지는 감동은 오래 지속된다는 것을 약속한다.

책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러하다. 기무라 씨는 사과재배지로 유명한 고장에서 태어나 사과 농부가 된다. 기계광이었던 그는 영국제 트랙터에 반해 농사를 시작한 기이한 인물이다. 처음에는 남들보다 열심히 농약을 뿌려 농협에서 상까지 받은 보통 농부의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이라는 책을 손에 넣게 된다. 후쿠오카의 자연농법은 소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농법'이다. 책에 묘사된 것은 벼농사였지만 기무라 씨는 자신의 사과밭에 이 농법을 적용시켜 볼 생각을 한다. 이는 농약에 민감한 아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해도 그의 열린 사고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당시는 아무도 농약 없이 사과를 재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우선 밭의 사분의 일 면적에 농약 살포를 끊고 시비는 퇴비로 국한시킨다. 약을 끊은 사과나무들은 약이 떨어진 마약중독자와 똑같이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사과밭은 벌레밭이 된다. 나무에 잎이 나오는 대로 벌레들이 다 먹어치워 꽃도 피지 않는다. 꽃이 피지 않으니 열매는 당연히 열리지 않는다. 이런 세월이 5년 동안 지속된다.

그동안 사과를 단 한 알도 생산하지 못한 기무라 씨는 가산이 몰락할 정도가 아니라 아예 파산지경에 이른다. 벼농사를 조금 짓고 채소를 길러 장인, 장모, 아내와 세 아이가 겨우 입에 연명할 정도로 가난해졌다. 겨울에는 공사현장에 가서 노동을 하거나 도시에 나가 술집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무슨 고집이었는지 그도 모른다. 어떤 계시나 자신도 모르는 확신이 있었을 게다. 동네에서는 이미 정신 나간 사람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그렇다고 그가 그 긴 세월동안 사과밭을 돌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반대로 하루도 빠짐없이 사과밭으로 가서 가지에 새까맣게 달라붙은 벌레를 잡는다. 그리고 자연성분으로 이루어진 대체농약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탐구한다.

그러던 그에게 전기가 온 것은 6년 째 되던 해 하필 그가 마침내 죽을 결심을 한 날이다. 사과나무는 거의 말라서 죽어가고 있었고 다른 희망도 없고 포기도 할 수 없었던 그는 목을 매 죽으려고 산을 오른다. 죽으려고 올라 간 산에서 건강한 도토리나무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단번에 깨닫는다. 농약을 한 번도 뿌려주지 않은 도토리나무가 그리도 건강한 것과 도토리 아래 가득한 잡초 밭의 상관관계가 한 번에 깨달아진다. 그리고 도토리나무 숲의 토양을 맨 손으로 헤치며 흙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온갖 미생물들의 활동으로 따뜻한 온기가 도는 흙, 풀뿌리로 인해 부드럽게 분해된 흙, 톡 쏘는 방선균 향이 배어 있는 흙. 그 때까지도 그는 농약살포만 멈추면 자연농법이 되리라 믿었다. 그래서 사과나무 아래의 풀밭은 항상 깨끗이 깎아 주었던 거였다. 그 자리에서 사과밭으로 돌아온 그는 우선 사과밭에 콩을 뿌린다. 흙 속의 질소량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콩이 무릎 위로 자란 사과밭은 더욱 지저분해 보인다.

그러기를 또 3년. 콩을 뿌릴 필요가 없어진다. 콩의 뿌리가 더 이상 혹이 형성되지 않는 것을 보고 흙 속의 질소량이 충분해졌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콩뿌리로 인해 흙이 한결 부드러워졌음을 느낀다. 사과나무도 서서히 회복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콩을 심는 지혜는 그동안 끊임없이 사과밭을 관찰하고 탐구한 결과다. 이제는 콩 대신 잡초가 무성하게 내버려 둔다. 잡초가 무성하니 온갖 곤충이 찾아든다. 곤충이 찾아드니 개구리와 새와 작은 포유류도 드나든다.

지저분한 잡초밭은 점차 낙원의 모습을 닮아간다. 그리고 생물들 사이에 서로 먹고 먹히는 자연현상이 벌어진다. 벌레가 사과나무를 쳐다보지 않게 된 것이다. 마침내 사과나무에 꽃이 핀다. 처음에는 일곱 송이의 꽃이 피고 두 알의 사과가 열린다. 그 이듬해 사과밭 가득 황홀한 꽃이 뒤덮고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그 사이 사과나무가 깊이 뿌리를 내려 근 20미터가 되고 사과와 가지를 연결하는 꼭지도 다른 사과밭에 비해 유난히 굵고 튼튼했다.

그러다가 태풍이 왔을 때 다른 사과밭은 엄청난 피해를 보았으나 그의 사과밭은 80퍼센트 이상이 무사했다. 그러나 사람들을 가장 감동시킨 것이 사과의 맛이라고 한다. 일반 과수원 사과맛과는 전혀 다른, 아마 태초의 과일 맛이었을 것 같다. 썩지도 않는다고 한다. 지금 그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생산량이 주문량을 따르지 못한다고 한다.

그를 위한 갈채를 보내야 할 것 같다. 그의 사과를 사람들은 기적의 사과라고 한다. 그러나 그 기적은 애초에 우리 곁에 있었던 거였다. 그것을 우리가 멀리 떠나보냈었고 다시 찾는 과정이 그리도 고달프고 고통스러운 거였다. 그는 어쩌면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먼저 그 길을 걸어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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